왜 나를 깨우는가

Pourquoi me réveiller(베르테르)

by 김환

죽은 줄 알았던 감정은

가장 고요한 순간에 다시 숨을 쉰다.


어느 날,

그 숨이 노래가 되었다.


“Pourquoi me réveiller…”


Jules Massenet의 오페라

《Werther》 3막 아리아.


사랑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흘러나오는 고백.


폭발하지 않는다.

천천히 스며든다.

감정은 선율 위에서

접힌 채 돌아 나온다.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때,

나는 이미 이탈리아 오페라에 깊이 빠져 있었다.

감정은 넘쳤고, 소리는 망설임 없이 앞으로 밀려 나왔다.


그에 비해 마스네의 음악은 머뭇거렸다.

감정은 안으로 접힌 채 휘돌았고,

긴장은 숨처럼 길게 이어졌다.


사춘기 시절 읽었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문장이

그 선율 위에서 살아 움직였다.

그 순간, 언젠가 이 노래를 불러보겠다는 생각이

조용히 자리 잡았다.



노래는 기술이 아니라 고백에 가까웠다.

그래서 낮은 음역에서 조심스럽게 시작했다.


어떤 테너는 이 노래를 크게, 멀리 울린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부를 수 없었다.


숨이 들리고

망설임이 남아 있는 노래가

오히려 더 진솔하게 느껴졌다.


피아니시모에서 치솟을 때마다 욕심이 앞섰다.

나는 숨을 늦추고

담을 수 있는 만큼만 남겼다.


숨에 묻힌 소리는 예상보다 낮게 시작되었지만,

곡은 천천히 나를 끌어올렸다.



2023년의 마지막 날,

랭리의 농막에서 송구영신 모임이 열렸다.


나는 마침내 이 아리아를 불렀다.

삶의 결에 스며든 감정과 생각을 과장 없이 얹어서.


반응은 엇갈렸다.

누군가는 독일 오페라로 착각했고,

누군가는 웃으며 말했다.


“마스네 오페라를 부를 줄 아는 남편이라니,

그걸로 충분한 것 아닌가요?”


농담이었지만, 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방금 전까지 무대에 있었는데,

어느새 ‘남편’이라는 자리에 놓여 있었다.

박수는 가벼웠지만

내 안에서는 무언가 정리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그날 이후, 이 노래를 길게 설명할 기회는 없었다.


한동안 나는 이 곡을 희망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부를수록 마음은 무거웠고,

위로처럼 느껴지던 음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왜 나를 깨우는가,

봄의 숨결로?”


봄은 새로움의 계절이지만

베르테르에게 봄은

이미 지나간 열정을 다시 견디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는 돌아갈 수 없었다.

되살아난 열정은 다시 덮을 수 없었으므로.


이 깨어남이 어디로 이어질지

나는 알지 못했다.

다시 고요해지기는 쉽지 않았다.


몇 번을 돌아서야

나는 이 노래 앞에 설 수 있었다.


부를수록,

오래 머물기 힘든 감정 앞에 서게 된다.


그래서였을까,

이 작품은 한동안

무대가 아니라 내 시간 속에 머물렀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처음 읽었을 때,

가장 오래 남은 것은

사랑이 아니라

끝내 말을 건네지 못한 시간이었다.


그 침묵이 얼마나 무거웠는지

나중에야 짐작했다.


그러나 사춘기 시절의 나는

죽음이 아니라

견디지 못한 시간에 더 가까이 서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 절규는 지금도 가볍지 않다.


아직 감당하지 못한 노래가

내 안에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2024년 9월 29일,

로마에서 돌아온 나는

파리 국립음악원을 찾았다.

한때 쥘 마스네가 교수로 있던 곳이다.


그곳을 나와

라파예트 대로를 따라 4.8킬로미터를 걸었다.


오페라 코미크 극장,

플라스 부엘 듀에 자리한 그 건물.

마스네의 《Werther》가 프랑스에서 초연된 곳이다.


가을비가 그친 뒤,

메트로 7호선 르 펠르티에 역 근처에서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극장은 적막했다.

기둥 사이로 바람만 스쳤다.


계단에 앉아 베르테르를 떠올렸다.


“Pourquoi me réveiller,

ô souffle du printemps…”


“왜 나를

봄의 숨결로 깨우는가 …”


오페라코미크(왜 나를 깨우는가).jpg

플라스 부엘듀Place Boieldleu에 있는 오페라 코미크 극장


쉰 목소리에는

오래 눌러 두었던 숨이 그대로 배어 나왔다.


눈을 뜨자

음이 더 이상 목에 남아 있지 않았다.

걸음은 조용히 앞으로 나갔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으며 처음 느꼈던

그리움과 세상에 대한 경외가 돌아왔다.


잊고 있던 감정의 원형이

노래와 함께 조용히 숨을 쉬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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