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h libe dich
베를린 – 멈춤을 배우다
2022년 5월, 베를린.
지인의 생일을 맞아 나는 베토벤의 <Ich liebe dich>를 불렀다.
박수는 크지 않았고,
노래는 짧았다.
그런데 그 조용함이 오래 남았다.
그날 이후 나는 이 곡을 연습할 때
소리를 키우는 대신,
숨을 먼저 고르게 되었다.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 도입부에서
나는 이 멜로디를 처음 들었다.
바리톤의 묵직한 첫 구절과
테너의 미성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멜로디만 흉내 내는 일과
이 노래를 부르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호흡은 길었고,
음은 생각보다 빨리 오르내렸다.
부르면 부를수록
숨이 먼저 흔들렸다.
그 지점은 생각보다 깊었다.
어떻게 해야
담담함 속에서 확신을 갖고,
되돌릴 수 없는 고백을
전할 수 있을까.
이 곡은 자기 호흡으로 말해야 하는 노래였다.
원래 제목은 ‘진실한 사랑’이었으나,
첫 소절 “Ich liebe dich”로
더 널리 알려진 이 곡은
독일 시인 Karl Friedrich Wilhelm Herrosee의 시
「부드러운 사랑(Zärtliche Liebe)」에
곡을 붙인 예술가곡이었다.
세 연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고백과 회상,
그리고 기도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단순한 선율 위로
서정적인 시가 스며들 듯,
이 곡은
말하듯이 노래하고
노래하듯이 속삭인다.
삶의 한적한 오후를
산책하듯 다가와
사랑을
격렬함이 아니라
담백함과 깊이로 전한다.
그래서 나는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노래가 아니라,
한 사람의 고백을
듣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 담백함 속에서
베토벤의 인간적 따스함은
한층 또렷해진다.
하지만
베토벤의 삶이 언제나
따뜻했던 것은 아니다.
이 곡을 연습할수록
나는 그가 왜 그렇게 많은 밤을
홀로 피아노 앞에서 보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어린 나이에
집안을 책임졌고,
청력을 잃은 뒤에도 그는
손끝과 몸의 감각으로
음악을 붙들고 있었다.
그 고집스러운 태도는,
내가 이 곡에서
쉽게 소리를 키우지 못했던 이유와
닮아 있었다.
그를 두고 한 평론가는 이렇게 말했다.
“베토벤은 음악에 질서를 부여하고
생명력을 불어넣는 정신활동을 통해,
자신의 작곡을
천지창조에 비견할
창조 행위로 승화시켰다.”
그 문장은 단순한 설명이라기보다,
내가 이 곡 앞에서 자꾸 멈춰 서는 이유에 가까웠다.
그에게 작곡은
단순한 예술 행위가 아니었다.
세계와 인간의 내면을
새롭게 해석하는
또 하나의 ‘창조’였다.
나는 그 대목에서,
이 짧은 사랑 노래가
왜 이렇게 쉽게 불러지지 않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 곡은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먼저 인간을
사유하라고 요구하는 노래였다.
그는
후원자의 초대장을 접어 두고
혼자 길을 나섰다.
때로는 ‘오만한 예술가’라 불렸지만,
그는 권위보다
예술의 내면적 소리에
귀 기울였다.
베를린에서 나는
노래를 부르기보다,
멈추는 법을
먼저 배웠다.
그 멈춤을 안고
한 달 뒤
체코의 작은 도시,
카를로비바리로 향했다.
카를로비바리의 테플라 강변
카를로비바리 – 걷는 사유
온천과 영화제로 유명한 이곳은,
괴테와 함께 산책하며
예술을 나누던 흔적을
품고 있다.
마침,
도시 전체가
‘사랑의 노래’를 주제로 한
영화제를 준비 중이었다.
클래식 평론가
홍성찬 교수는
『나를 꿈꾸게 하는 클래식』에서
그 장면을 이렇게 전한다.
좁은 길을
나란히 걷던 두 사람 앞에
황실의 행렬이 다가왔을 때,
괴테는
길가로 비켜서며
모자를 벗었지만,
베토벤은
고개를 들고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괴테는 멈췄고,
베토벤은 멈추지 않았다.
베토벤은 인간과 세계를 향한 탐구를 통해
보편적 가치를 음악으로 표현하려 했다.
괴테 역시
“음악은 모든 예술 중
가장 숭고한 경지”라고 말했다.
두 사람이 나눈 대화와 산책은
어쩌면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행위였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이 노래 앞에서
여전히 쉽게
첫 음을 꺼내지 못한다.
그는 외출할 때마다
지팡이와 모자를 챙기고,
주머니에는
작은 수첩과 필기구를 넣었다.
떠오르는 선율이나 문장을
그 자리에서
적곤 했다.
그에게 자연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사유의 공간이자
음악의 원천이었다.
“나무들이 내게 말을 걸고 있지 않은가!"
그의 음악은
책상 위가 아니라
대지 위,
나무와 하늘의 숨결 속에서
태어났다.
카를로비바리의
테플라 강가를 거닐다
문득
<Ich liebe dich>가 떠올랐다.
노래를 부르기 전,
강은 그대로 흐르고 있었고,
나는 첫 음을 미뤘다.
그 짧은 침묵이
나를
더 긴 시간으로
데려갔다.
제주 애월 ― 다시, 첫 음 앞에서
2025년 12월,
크리스마스를 앞둔
제주 애월의 한 카페에서
나는 지인의 친구들 앞에 섰다.
열두어 명 남짓한 공간,
각기 다른 얼굴과 표정 속에서
나는 다시 <Ich liebe dich>를 꺼내 들었다.
첫 음은 크지 않다.
그러나 그 음이 정확히 중심음에 닿지 않으면
다음 프레이즈 전체가 흔들린다.
그래서 나는 늘
반 박자만큼 숨을 더 머금는다.
“Ich liebe dich~”라는
단 한 구절로
이 곡은
변함없는 사랑을
담담히 전한다.
나는 여전히 첫 음을
조금 늦게 꺼낸다.
그 짧은 지연 속에
내가 감당해야 할 시간이
함께 담겨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