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donna è mobile
베네치아의 바람 앞에서
나는 이 노래를 크게 부르지 못했다.
<La donna è mobile>.
가볍게 흘러가지만 쉽게 사라지지 않는 선율.
처음 이 노래를 마음에 담은 것은
2018년 성악 아카데미 발표곡을 정하던 날이었다.
한 단원이 <여자의 마음>을 불렀다.
맑고 단단한 음색이었다.
그는 끝내 다른 곡을 선택했지만,
그날 이후 이 노래는 마음에 남았다.
언젠가 불러보리라 생각했다.
이 곡이 유명해서는 아니었다.
짧은 선율 안에 숨어 있는 풍자와 역설,
가볍게 흘러가지만 쉽게 사라지지 않는 성질이
나를 붙들었다.
La donna è mobile,
‘여자의 마음은 바람에 날리는 깃털 같다’는 뜻의 이 아리아는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1851) 3막에서
만토바 공작이 부르는 노래다.
이 오페라는 빅토르 위고의 희곡
《환락에 빠진 왕》에서 출발했다.
검열로 무대는 파리에서 만토바로 옮겨졌지만,
권력과 욕망, 인간의 위선은 옮겨지지 않았다.
베르디는 제약 속에서도 본질을 피해 가지 않았다.
1851년,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에서 초연된 《리골레토》는
곧 성공을 거두었다.
<여자의 마음>은 그중에서도 가장 빠르게 퍼져 나간 노래였다.
대중은 이 선율을 흥얼거렸지만,
그 가벼움이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는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궁정 광대 리골레토가
권력의 조롱 속에서 살아가다
딸 질다를 잃는 이야기의 오페라였다.
웃음과 냉소, 사랑과 파멸이
같은 무대 위에 놓인다.
베르디는 인간을 미화하지 않았다.
막이 내린 뒤에도
관객의 숨은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욕망은 늘 앞서 있었고,
대가는 뒤늦게 도착했다.
1813년, 에밀리아로마냐의 작은 마을 레 론콜레.
베르디는 교회 오르간 앞에서 음악을 배웠다.
밀라노 음악원 입학에는 실패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젊은 날의 방 안,
오르간 건반 위로
촛불이 흔들렸을 것이다.
《나부코》의 성공은
아내와 두 아이를 잃은 상실과 겹쳐 있었다.
그에게 음악은
위로이자 증언이었다.
울음이었고, 버팀이었다.
나는
그 음악이 태어난 장소를 찾아갔다.
2024년 9월 26일,
만토바에서 베네치아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창밖으로 파르마가 스쳐 지나갔다.
베르디의 이름이 거리마다 남아 있는 도시였다.
그러나 목적지는 라 페니체 극장이었다.
불에 타고 다시 세워진 극장.
파괴를 겪고도 음악을 포기하지 않은 장소.
극장은 조용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아직 박수가 남아 있는 듯했다.
베네치아는 물 위에 세워진 도시다.
말뚝 위에 얹힌 시간처럼,
위태롭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산 마르코 광장에서
카페 플로리안에 들렀다.
차 한 잔을 마시며
니노 로타의 선율을 들었다.
시간은 그곳에서 잠시 느려졌다.
라 페니체 극장 앞에 섰을 때,
나는 조용히 <여자의 마음>을 따라 불렀다.
크게 부르지 않았다.
이 노래는 그렇게 부르는 노래가 아니었다.
“La donna è mobile Qual piuma ai vento…”
“여자의 마음은 바람에 날리는 깃털 같아…”
이 가벼운 문장 안에는
19세기가 규정한 여성의 초상이 담겨 있다.
변덕, 유혹, 희생.
그러나 베르디는 그 이미지를 찬미하지 않았다.
베네치아의 라 페니체(La Fenice) 극장
이 노래는 공작의 노래다.
권력자의 가벼움,
책임지지 않는 말의 속성을 드러내는 노래다.
질다의 죽음은
그 노래가 남긴 대가였다.
라 페니체 극장 앞에
바람이 스쳤다.
그 바람은
지나가지 않고
지금도 내 안에서 흔들린다.
극장을 나서자,
수로 위로
잔잔한 물결이 번졌다.
세월이 흘러도
선율은 남고,
인간의 마음은 여전히
바람 속에서 방향을 잃는다.
아마도 그것이
내가 이 노래를
오래 놓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