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고, 부디 살아 있으라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가 끝나고 난 후

by 류예지

히밀라야에서의 만남을 끝으로 숀의 행방은 다시금 묘연해졌다. 헤어질 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나지 않았던 월터는 자신의 어머니를 핑계 삼아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숀. 어머니의 귤 케이크가 생각나면, 그때처럼 저희 집에 한 번 들러주시겠어요?”

“고맙소. 월터. 이거 하나만은 잊지 말게. 귤 케이크를 먹고 싶을 때, 매번 맛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이미 축복받은 사나이야.”


수개월이 흐른 지금도, 가끔 월터는 숀의 안부가 궁금해지곤 한다. 세상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 그의 필름 카메라에 삶의 어떤 순간이 포착되고 있을까 궁금해서. 그의 사진을 게재해줄 오프라인 매거진 수가 줄어드는 만큼, 그만의 철학을 담아낼 지면 역시 줄어드는 셈일 테니까...


사라지는 것들이 늘어날수록,
그 사라짐에 기댔던 사람들은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야 하므로
이따금, 월터는 그의 안위가 염려되곤 했던 것이다.



하지만 히말라야에서 그토록 고대했던 눈표범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음에도, 그 중요한 ‘순간’을 ‘순간’으로 남기는 쪽을 택한 그를 보며, 월터는 자신만의 기준으로 타인을 평가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월터는 선택 이후에 벌어질 가능성을 섣불리 상상하며 불안에 떨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상상과 현실 사이에 찬물처럼 끼어드는 잠시 멈춤, 그러한 시간이 있었기에 월터는 셰릴을 더 이상 상상 속 여인으로 남겨두지 않을 수 있었다.


직장동료가 아닌, 인터넷 만남 사이트의 프로필 속 이미지를 벗어난 현실 속 셰릴은 훨씬 더 사랑스러웠다. 무엇보다 둘은 음악적 취향이 잘 맞았다. 셰릴은 한때의 월터처럼 데이비드 보위의 음악에 심취했던 적이 있었다고 고백하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가장 좋아한 뮤지션은 제니스 조플린이었어요.”


월터에게 재지 않고 속마음을 그대로 표현하는 셰릴은 그 솔직함마저 사랑스러운 여자였다. 무엇보다 감동적이었던 건, 막연한 두려움으로 구매를 미뤘던 라이프지 마지막 호를 예기치 않는 상황에서 선물해준 그녀의 마음 씀씀이였다. 프로필 사진을 향한 덧없는 윙크 정도로 그녀에 대한 마음을 접지 않은 것을, 월터는 남은 인생을 걸어도 좋을 만큼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다.


지난 금요일, 저녁 데이트를 끝마치고 돌아온 월터는 라이프지 마지막 호를 찬찬히 정독했다. 그러고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어느 순간부터 자신 역시도 라이프지에서의 삶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는 사실을. 대체적으로 일은 일일 뿐이었으므로. 숀이 뜻하지 않은 순간에 월터에게서 무언가를 발견했다고는 하나, 생각할수록, 그것은 진실로 자신의 일을 사랑해서라기보다는 인생에서 주어진 어떤 숙제를 실수 없이 마무리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컸다.


라이프지 폐간호는 지난 역사를 되짚어보는 칼럼으로 구성됐다. 그간의 고군분투와 성공담, 정체, 독자들의 추억으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월터는 생각했다. 기사의 시작과 끝을 정리하며 라이프지로서 자생할 수 있는 마지막 대안을 구상할 수는 없었을까? 그러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더욱 명료한 사실 한 가지를 뼈 아프게 깨달았을 따름이었다. 과거에 비해 현격히 줄어든 광고 지면을, 그나마 남아 있는 오프라인 구독자를 온라인으로 연결하고자 하는 회사만의 생존 전략을 순전히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는 일이야말로 대표 이하 임원들의 역할이 아닐까 하는...


퇴사 후 수령한 퇴직금은 적지 않은 액수였지만, 그것이 월터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데 있어 얼마큼의 어떤 도움이 될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막연한 불안으로 이력서를 썼지만, 그것이 어떤 목적성을 가진 것은 아니었기에 월터는 매번 경력기술서를 무슨 말로 채워야 할 지 난감했다.


하지만 월터는 정말로 오랜만에 컴퓨터 앞에 앉을 수 있었다. 그동안 어떤 마음으로 라이프지를 만들어왔는가를 차분히 돌아볼 수 있었기에. 매 순간 자신의 일을 사랑했다고 자신할 수 없지만, 단 한 번도 허투루 라이프지를 만든 적은 없었다. 그날, 숀은 어쩌면 대신해서 '월터'라는 한 사람을 발견해준 것인지도 몰랐다. 본인조차도 잊고 있었던 월터 미티의 진실된 표정을.




내 이름은 월터 미티다.

이제 곧 마흔세 살이 된다.

마흔두 살까지 고향인 피닉스와 내슈빌을 단 한 번도 떠나 본 적이 없지만,

마흔두 살이 끝나갈 무렵, 나는 아이슬란드와 아프가니스탄, 히말라야를 자력으로 다녀왔다.

그러는 동안 아이슬란드의 바다에서 상어에 물려 죽을 뻔했으며,

화산 폭발의 순간, 잿더미와 그을음, 뜨거운 용암으로부터 죽을힘을 다해 달아났다.

또한 멸종 직전의 눈표범을 두 눈으로 직접 보기도 했다.

지금도 쓸데없는 상상들로 여전히 머릿속은 복잡하지만,

이제 나는 상상했던 것들을 하나씩 현실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라이프지를 만들며 보냈던 시간은, 그 노력의 결과다.

이것이야말로 대체 불가능한 나만의 포트폴리오다.

월터는 한 시절을 라이프지와 함께 했다.

라이프지는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삶(Life)이 끝나는 것은 아니기에,


살아가라, 월터 미티.

부디 살아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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