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 못한 편지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가 끝나고 난 뒤

by 류예지


아델에게.



그리운 아델. 엠마의 전시회에서 너를 마지막으로 만난 후 1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네. 시간 참 빠르다. 잘 지내고 있니? 얼마 전, 네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던 차에 네 소식을 들었어. 네가 일 년 전쯤 애정을 갖고 일하던 학교 일을 그만두고, 아동교육 쪽으로 좀 더 체계적으로 공부를 하기 위해 뉴욕으로 떠났다고 말이야.



그 소식을 듣고 '세상에 아델이! 그럴 줄 알았어. 내가 알던 사람들 중에서 아델은 정말 열정적이고 멋진 사람이었으니까.'라는 탄성이 절로 나왔지. 그러다 문득, 네가 보고 싶어서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됐어. 너는 어쩌면 이런 나를 촌스럽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간단하게 이메일이나 채팅 앱으로 안부를 전해도 될 것을, 이렇게 악필로 편지를 쓰고 있으니 말이야. 그나저나 내 편지를 받는 네 기분은 어떨까. 얼떨떨하려나. 설마, 내 이름을 까먹은 건 아니겠지?



전시회에 뒤늦게 도착한 엠마의 지인 중 한 명이, 애프터 파티에서 네 이야기를 하는 걸 들었어. 시내의 한 클럽에서 혼자 술을 마시던 너를 봤다고 말이야. 그때 나는 조금 취한 상태였어.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엠마의 표정은 뭐랄까. 담담했어. 전시회를 돌아보는 내내 곧 쓰러질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던 너와는 대조적이었지. 엠마는 그 행사의 호스트였으니까. 그 단단하고 견고한 몸짓이라니. 행사의 처음과 끝을 프로페셔널하게 챙기던 엠마의 행동은 이후, 그녀의 작품이 비싼 값에 팔리는 데 한몫했지. 그녀는 차갑고 이성적이며, 이지적인 태도로 유명세를 얻기도 했으니까 말이야.



넌 모를 거야. 네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된 후, 나 역시 갤러리를 뛰쳐나왔다는 걸. 약속된 만남이 있었기 때문에,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어. 멍청한 소리 같겠지만 나는 네가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품고 있었어. 하지만 넌 끝내 돌아오지 않았지. 평소 즐겨 신던 낡은 운동화가 아닌 뾰족한 구두를 신고 나타난 너는 어디로 가버린 걸까. 해가 지는 방향으로 걸어갔을까, 아니면 해가 지는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을까. 나는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멍청한 생각만을 도돌이표처럼 반복했을 뿐, 도무지 네가 어디로 갔는지는 짐작할 수 없었어. 그리고 다음날 내 방 침대 위에서 눈을 떴지. 어떻게 내 방까지 올 수 있었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아.



다만 눈을 떴을 때, 나는 오롯이 너를 떠올리고 있었어.



너를 마지막으로 봤던 날 푸른색 원피스를 입고 나타난 넌, 붉은색 매니큐어를 한 손가락으로 길게 내려온 머리카락을 귀 뒤로 연신 넘기던 넌, 여전히 매력적이었어. 그리고 엠마를 바라볼 때 살짝 들린 윗입술이나 머쓱한 순간이면 일부러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는 습관까지도. 엠마는 그 모습을 어떻게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난 알고 있었어. 그래서 언제나 이 한 마디를 해주고 싶었어.



네가 엠마의 곁에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넌 그 자체로 이미 아름답게 빛나는 존재였다는 걸.



네가 엠마의 지인들에게 대접했던 식사, 그 저녁의 메인 요리였던 토마토 스파게티의 맛은 정말 일품이었지. 그래서 가끔 그 맛을 추억해. 우리 엄마도 너만큼 스파게티를 잘 만들지는 못할 거야. 어때? 이 정도면 내가 너를 그리워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생각되지 않아?

소문이긴 하지만 엠마는 또 여자 친구와 소원해진 것 같더라. 뮤즈가 바뀔 때마다 엠마의 작품은 변화무쌍 해지는 듯해. 좋게 말하면 작품 세계가 더 깊어지는 거겠지만, 글쎄. 미술에 조예가 깊지 않은 난 그게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는 모르겠어. 다만, 그게 엠마가 자기감정에 충실할 수밖에 없는 이유일 거라는 걸 어렴풋하게나마 추측할 뿐이야. 그러니, 아델. 엠마를 원망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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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한 가지 있어.
세상에는 인간의 감정이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것.
그 빛깔이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펼쳐진다는 걸.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색은,

푸른색만은 아닐 거라는 거야.


그러니, 언젠가 이 시절을 아프지 않고 추억할 수 있게 될 때, 이곳으로 다시 돌아와 줄래?
나를 찾아와 줄래?
머리카락을 여전히 헝클어뜨리고 있어도 좋아.
낡은 운동화 차림이어도 좋아.

어떤 모습이어도 상관없어.

그런데 말이야.
이 말을 하고 있는 지금 난, 후련하면서도 조금 슬퍼.

실은 비참해지는 기분이야.

아델,
오, 아델.
정말 미안해.

이 편지는,
그러니까 이 편지는 말이야.

애초부터 부칠 수 없는 편지였어.

- 네가 사무치도록 그리운, 사미르가





영화 :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79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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