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가 셉스를 떠나고 난 후에도 밴드의 연주는 계속되었다. 멤버들은 한 여인이 자리를 뜨고 난 후, 텅 빈 관객석을 주시하며 이내 흐려져버린 내 눈빛의 미묘한 변화를 감지한 듯했으나, 그들은 연주 앞에서만큼은 자비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무턱대고 감상에 빠지는 일이야 말로 얼마나 위험한 지를 이미 알고 있었다. 매주 금요일 밤이면 밴드의 공연을 보기 위해 셉스를 방문하는 손님들이 있다는 것을 한순간도 잊어서는 안 됐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잘 풀리지 않는 연애에 지칠 때, 술과 음악에 기대 아무 생각 없이 어깨를 들썩이고 싶을 때, 사람들은 이름마저 멍청하기 그지없는 셉스로 연결되는 지하계단을 자처해서 내려왔다.
우리는 오히려 위로받았다. 무언가를 상실한 표정, 그들의 눈빛 하나하나를 맞추며 연주에 몰두하는 순간, 이 공간을 갖기 위해 감내했던 엄청난 스트레스가 거짓말처럼 상쇄된다는 것을. 거나하게 취한 마지막 손님이 ‘너희들 그거 알아? 이 도시에서 너네만큼 재즈를 연주하는 밴드는 없을 거야. 정말 끝내줘!’를 외치며 빠져나간 후 뻐근한 어깨를 주무르며 무대 위에서 텅 빈 홀을 바라보는 그 순간만큼은, 휘몰아치는 삶의 광폭한 칼날이 어째서인지 조금 무뎌진다는 것을.
주저앉고 싶을 때, 나와 우리를 일으켜 세운 건 팔 할이 셉스였다. 미아가 지어준 멍청하기 그지없는 그 이름 ‘셉스’. 바(bar) 이름을 셉스로 정했다고 했을 때 스태프 중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으니 어쩌겠나.
우리는 한 번 시작된 이 연주를 멈춰서는 안 된다.
검은색 건반과 하얀색 건반은 거대한 파도와 같고, 나의 열 손가락은 그 파도에 몸을 맡긴 채 바다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 서퍼(Suffer)에 지나지 않으므로.
미아가 떠난 후,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의 힘으로 서핑보드 위에 선 한 명의 서퍼(Surfer)를,
파도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 내 모습을.
라라, 미아
셉스를 빠져나온 후, 급격히 어두워진 낯빛에 데이비드가 슬그머니 어깨를 두르며 말을 걸어왔다.
“리틀 걸. 피아노 연주가 뭐랄까? 좀 슬펐지?”
“응. 아냐. 그렇게까지 슬프지만은 않았어.”
“그렇다면 다행이야. 바람도 좋은데 우리 좀 더 걸을까?”
“정말 좋은 생각이야.”
소년 같은 눈빛의 데이비드를 볼 때면, 영락없이 연애 시절이 떠오른다. 영화사 관계자를 통해 내 연락처를 물어왔던 촉망받는 IT 업계 종사자였던 그는, 첫 데이트 때 파리에서 신인배우로 활동하던 무렵부터 나의 연기를 관심 있게 지켜봤다고 말했다. 한때 시나리오 작가를 꿈꿨다던 그는 데이트 내내 미묘하게 변화하는 내 표정에 울상을 짓더니, 헤어질 무렵 자신이 오늘 하루를 망쳐버린 것 같아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오늘의 그처럼, 그 소년 같은 눈빛을 한 채로 말이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겪었던 모든 일은 우연의 결과일 따름이었다. 나탈리의 공연 관람을 하러 가기 전에 차가 막히지 않았다면, 저녁 먹을 장소를 찾기 위해 거리를 배회하지 않았다면, 우연히 피아노 연주를 들은 데이비드가 나를 그곳으로 이끌지 않았다면, 지하계단을 따라 내려간 바의 이름이 셉스가 아니었다면, 무대 위 피아노 연주자가 세바스찬이 아니었다면...
수많은 ‘만약’을 갖다 댄들...
삶의 어느 순간, 과거를 돌아보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우리 부부는 매주 금요일이면 아이를 맡기고 데이트를 한다.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에 들어가게 되면 장기간 집을 비우는 나의 스케줄을 고려해 내린 결정이었다. 그 역시 자신의 사업체를 운영 중이므로 두말할 것 없이 바빴지만 결혼 후 그는 집을 지켰고, 이를 위해서는 부부만의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을 중요하게 강조했다. 매주 금요일 밤의 데이트를 먼저 제안한 건 데이비드였다.
나는 연애시절부터 데이비드의 한결같음에 놀랐다. 불안정한 배우 생활을 겪으며, 어느덧 나 역시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매주 금요일 밤의 데이트는 나조차도 잊고 지내는 어느 시절의 나로 돌아가게 해주는 통로가 되었다. 배우로 살지 않을 때에도 근사한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고 기분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을, 그 통로의 가교 역할을 자처하는 데이비드를 통해 배우로서의 미아, 아내로서의 미아, 엄마로서의 미아가 될 수 있었다.
한때 소년이었던 한 남자와 함께 미아(迷兒)처럼 좌충우돌할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 지나간 후, 나는 소년의 눈빛을 가진 한 남자를 만났다. 이제 나는 그를 기준점 삼아 현재로 돌아오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런 산란스러운 마음을 애써 표현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한 재즈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듣고 나서, 그렇게까지 슬프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그 역시 나처럼 현재를 살며, 현재를 연주하고 있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