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에게 전해줘요. 나는 괜찮을 거라고.

영화 <토이 스토리 4>가 끝나고 난 후

by 류예지

친애하는 우디 씨에게.


당신에게 이런 편지를 전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아이에게 연락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서요.


내가 당신에게 이렇게 사연을 보내는 것은

내 추억의 친구 소둥이에게 안부를 전해주었으면 해서입니다.

당신이 앤디에게서 보니로,

다시 보니의 곁을 어렵사리 떠나

주인을 잃은 장난감에게 혹은 장난감이 필요한 주인에게

새로운 인연을 맺어주는 활동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나저나 소둥이라니...

엄청 촌스러운 이름이지요?

왜 그 아이의 이름을 소둥이로 짓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아요.

소둥이는 소의 형상을 한 내 손바닥만 한 도자기 재질의 인형이었고,

우리 집의 막내, 막둥이라는 뜻을 더해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 아이를 처음 만났을 때가

보니 정도의 나이였을 무렵이었어요.

남동생과 나는 그 아이를 서로 갖기 위해 자주 싸웠어요.

조그만 시골 동네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우리들은

긴 하루해가 떨어질 때까지 갖고 놀만한 장난감이

도시 아이들에 비해 그리 충분하지 않았으니까요.

어느 날은 내가,

어느 날은 내 남동생이 소둥이를 차지할 수밖에 없었죠.


쫑긋 세운 두 귀, 바늘구멍처럼 작은 눈,

정직한 콧구멍, 짧은 팔다리,

소임에도 불구하고 두 다리로 우뚝 선 채

고고하게 앞을 응시하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갖지 못한 용기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소둥이에게 구멍 난 양말로 만든 망토를 씌워 하늘을 날게 하기도,

큰언니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의 카세트테이프 케이스를 견고하게 쌓아 올려 삼층집을 만들어주기도 했어요.

1층은 동생 방, 2층은 소둥이 방, 3층은 제 방이었죠.

우리는 삼층집 창문에서 나란히 앉아

별빛을 바라보거나,

쏟아지는 비를 함께 바라보기도 했어요.


소둥이에게 흥미가 떨어지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인지 솔직히 잘 기억나지 않아요.

친한 친구네 집에 바비인형이 생기면서부터였는지,

아니면 배를 타고 전 세계를 떠돌던 큰아버지가 레고 세트를 사들고 저희 집을 찾아왔을 때였는지,

카세트테이프에서 CD로 그리고 MP3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로 관심사가 옮겨가면서부터였는지...


"우리는 언제나 사랑하는 존재를

순식간에 잊어버리기도 하니까요.

그것을 어떻게 잊어버렸는지조차 새까맣게 잊고 살기도 하니까요."




아마, 영화가 끝날 무렵

평소라면 철딱서니 없어 보이기만 하는 버즈가 당신에게 던진 한 마디 덕분이었는지 모르겠어요.


“그녀는 괜찮을 거야.”

"알아. 보는 괜찮을 거야."

"아니, 보니 말이야."


실은 그래요...

소둥이가 떠난 자리에는 더 많은 재미있는 것들로 손쉽게 채워졌으니까요.

학업이었을 수도, 우정이었을 수도, 연애였을 수도, 취업이었을 수도 있겠죠.

넓은 세상에 나가보니, 이 세상에는 장난감보다 더 재밌는 것들이 많더라고요.


하지만 이상하죠?

잠시 잊었을 뿐, 나는 모든 걸 기억하고 있었어요.

그래요, 가장 선명한 건 소둥이와 이별하던 그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엄마는 커다란 상자를 갖고 와서

제가 고향집을 떠나기 전 불필요한 것들을 정리해서 담으라고 했어요.

방 정리를 하던 나는,

책상 선반 위에 놓여 있던 먼지 묻은 소둥이를 꺼내 한참 고민했던 것 같아요.

서울 자취방에는 내 방이 없었기 때문에 소둥이를 데리고 갈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 작은 존재의 한 자리를, 저는 쉽게 내어주지 못했어요.

여유가 없었고, 시간이 없었고, 솔직히 말하면

그때는 촌스러운 이름을 모조리 버리고 새롭게 출발하고 싶은 때였으니까요.


그래서 그 상자 맨바닥에 넣어버렸던 것 같아요.

그 위에 각종 교과서와 문제집을 쌓아 올렸을 거예요.

그때는 알지 못했어요.

이별의 순간은 이처럼 불가피하게 찾아온다는 것을요.

수년이 지난 후, 엄마는 상자의 행방을 기억하지 못했어요.

그 상자에 얼마나 제가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들어 있었는지를 설명할 길이 영원히 사라진 거죠.

그러고 보니 제가 소둥이를 좋아한 이유를 알겠어요.

소둥이는 입이 없었어요.

그래서였는지, 우리 집의 막둥이였던 소둥이는 언제나 내가 하는 모든 말을

어른스럽게 쫑긋 세운 채 귀 기울여 들어줬어요.


언니들과 싸웠을 때,

집안 어른들이 남동생만 예뻐하는 것 같아 서운했을 때,

피아노 학원에 가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가지 못했을 때,

하고 싶은 말은 많고 많았지만

그 누구도 나의 말에 귀 기울여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유년의 아이는,

그 시절을 무사히 지나 지금의 내가 되었으니까요.

지금의 내가 전적으로 마음에 드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 시절의 내가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없을 거예요.

"그러니, 우디...

언젠가

소둥이를 만난다면 전해주실래요?

고마웠다고,

나는 괜찮다고,

너로 인해 정말 행복했다고 말이에요."




https://search.daum.net/search?w=tot&DA=YZR&t__nil_searchbox=btn&sug=&sugo=&q=%ED%86%A0%EC%9D%B4%EC%8A%A4%ED%86%A0%EB%A6%AC+4


작가의 이전글나의 스무 살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