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

영화 <레이디 버드>가 끝나고 난 후

by 류예지

엄마.


엄마, 잘 지내?

이 음성을 보내기까지 정말 고민 많이 했어.

생각해보니 이제껏 엄마와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더라구.

나는 엄마가 내 말을 제대로 들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이야기가 두서없이 길어질 때면 가슴 한 쪽이 꽉 막힌듯 답답할 때가 많았거든.


그래서 세크라멘토를 떠나던 날, 오히려 마음이 편안했어.

당분간은 엄마와 부딪힐 일이 없을 테니까.

솔직히 떠나는 순간까지도

엄마에게 이해를 구해야 한다는 사실에 넌덜머리를 느끼고 있었으니까.

엄마는 이런 나를 서운하게 생각할지도 몰라.

오, 크리스틴...

네가 언제쯤이면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될까...

그렇게 중얼거릴 지도 모를 일이지.


엄마, 그거 알아?

엄마에겐 약간의 신경질적인 면이 있었어.

어린 내가 감당하기엔 다소 어려운 부분이었어.

그것이 엄마와 함께 했던 18년 동안, 어떤 식으로든 내게 흔적을 남겼으니까.

세크라멘토의 익숙한 풍경들 역시 마찬가지였지.

하지만 UC데이비스를 포기하고 내가 뉴욕의 대학교로 온 것은,

그 흔적이 어쩔 수 없이 불러낸 결과값이라고 생각해.

엄마는 언제나 가족을 위해

본인이 희생을 감수해왔다고 생각해왔고,

내게도 그 희생의 일부를 감당하기를 바랐던 것도 알아.

당장 학비 문제만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그 부분을 내가 감당할지, 말지에 대한 부분은

전적으로 내 선택인 것 같아.



엄마의 삶이 있듯,

나의 삶도 있으니까.

가족을 사랑하는 것과,

가족을 위해 내 삶을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두는 건 다른 범주의 일이니까.


그러니 내게

‘포기’부터 먼저 가르치는 엄마가 되진 말아줘.

뉴욕의 풍경도 많이 아름다울 거라고 말해줘.


설령 내가 생각했던 삶이 아닐지라도,

그러기엔 나는 궁금한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너무 많거든.


레이디 버드는

당신의 작품이라는 것을 잊지 마.


언젠가 엄마는 내게 이런 말을 하게 될지도 몰라.

거봐, 엄마 말 들으라고 했지?

그랬다면 네 인생은 달라졌을 거라고 말이야.


하지만, 엄마.

나는 내가 선택한 인생에서,

적어도 엄마를 원망하는 일은 없을 거야.

떳떳할 테니까.

그 떳떳함이 나를 세상 앞에서 당당하게 만들 테니까.


마음껏 사랑할 수 있도록,

마음껏 포기할 수 있도록,

지금의 나를 믿고 지켜봐줘.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말이 두서없게 들릴 수도 있어.

간밤에 마신 술이 아직 덜 깼는지도 몰라.

하지만 내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선명해.

이곳에 와서 가장 하기 싫었던 숙제 중 하나였던

엄마에게 연락하는 일을 이제 막 해치웠으니까.

이젠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아.


엄마, 아직은 잘 모르겠어.

나는 이제 겨우 열아홉 살인 걸.


그래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무엇을 해야 할지 잘 알아.

이제 술을 깰 겸 따뜻한 스튜 한 그릇을 먹으러 갈 거야.

이왕이면 근사한 레스토랑으로 말이지.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이 먹고 싶지만,

특히 세크라멘토의 군터 아이스크림은 정말 그립지만,

글쎄...

아직은 그곳으로 돌아갈 날이 먼 것 같아.


사랑해, 엄마.

또 연락할게.

-당신의 레이디 버드, 크리스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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