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실 언니!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가 끝나고 난 후

by 류예지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는 다짜고짜 '언니'라고 부르며

팔짱부터 끼는 사람을 경계했다.

언니, 동생 할 정도로 나는 너와 친밀함을 느끼지 못하는데,

왜 당신은 다짜고짜 '언니'라고 부르는 걸까?

나이와 직급에 상관없이 '~ 씨'라고 부르는 것이 (나는) 훨씬 편한데 말이야.


그뿐인가. 조직 내에서도 서열이 가려지고 나면

대책없이 말부터 놔버리는 선배들도 싫었다.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사회생활은 서로를 향한 존중부터 선행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말을 놓는 것에서부터 묘하게 발생하는 권력 구도가 싫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나는 찬실 씨를 보면서, 문득 찬실 언니라고 부르고 싶어졌으니까.

한 번 만난 주제에.

단 한 번 그녀를 따라 산골짜기 언덕배기에 있는 그녀의 집까지 따라가본 주제에,

대뜸 그녀와 '호언호동'이라도 하겠다는 뜻인가!


아니다, 그런 건 아니다.

발 연기의 선두주자 소피가 그랬듯, 내게도 '언니, 언니'라고 부르며

대책없이 안기고 싶은 언니라는 존재가 필요했으니까.


학교, 사회, 개인 커뮤니티 생활을 거치며 내게도 수많은 '언니'들이 생겼다.

하지만 정말 '언니'라고 부르고 싶은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내게 진짜 '언니'가 되어주고 싶어했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의 철없음으로 인해 부지기수로 떠나보냈다.


그렇게 떠나보낸 언니들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어느덧 내가 '언니'로 불려야 할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언니가 되어보니 알겠더라.

'언니'가 된다는 것이,

누군가의 '언니' 노릇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후배에겐 말을 쉽게 놓지 못하는,

선배에겐 살갑게 '언니'라고 부르지 않은 내게 사람들은 종종 '벽'을 느낀다고 했다.


그런데,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벽이 생기는 순간은, 편한 말투나 호칭으로 상대를 부르지 않을 때가 아니었다.

선, 후배를 막론하고

존중과 존경을 담지 못하는 배려 없는 상황 속에서,

나는 오히려 거대한 벽을 마주했으므로.




영화 PD로서의 삶이 한순간에 좌절된 찬실 씨를 보면서,

연애도 못하는 찬실 씨를 보면서,

대파를 들고, 긴 언덕길을 올라

붉은 노을을 바라보며 '희망가'를 부르는 찬실 씨를 보면서 생각했다.


"누구도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

그래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최악의 순간에도

여전히 꿈을 찾아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비루한 숙명 아니겠냐고."


김영 같은 연하남과의 달콤한 연애가 아니더라도,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헷갈릴 때마다 귀신처럼 뿅, 하고 나타나는

팬티 바람 장국영과의 티격태격 상황 속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 힘은

결국 자신이 걸어온 그 길에서 나온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찬실 같은 사람도 있다고.


내가 찬실 씨를 위해 해주고 싶은 유일한 말은,

그것은 어쩌면 소리 높여

이렇게 부르는 일이 아닐까.


찬실 언니!

찬실 언니!

언니는 참으로 복도 많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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