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스트레스의 비애
나는 호모 스트레스이다. 늘 스트레스 속에 사는 인간이다. 스트레스는 광범위한 말이다 중압감, 두려움, 죄책감, 불안증, 부담감 등을 모두 내포한다. 그리고 스트레스는 '걱정'이라는 단어로 치환될 수도 있다. 난 늘 걱정이 많았다. 초등학생 때는 나의 진로를 걱정했고, 중학생 때는 나라를 걱정했고, 고등학생 때는 인류를 걱정했다. 지금은 다행히도 걱정이 쪼그라들어서 내 삶, 내 가족이 늘 걱정이다.
요즘 내 스트레스의 근원은 이상주의자인 나 자신이다.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어떤 일이든 잘하고 싶다. 그래서 휴직하고 있는 지금도 내내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 혼자 좋자고 휴직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조금 더 아빠에게 자주 찾아가 봐야 할 것 같다. 조금 더 자주 시어머님께 가야 할 것 같다. 아이들에게 조금 더 맛있는 집밥을 만들어 주어야 할 것 같고, 신랑에게는 조금 더 집안일에 부담을 덜어주고 싶다. 혹시라도 집에서 내가 조금 늘어져있거나 드라마를 보며 시간을 보내면,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나를 엄청 노려보고 있다. 난 내 눈치가 보여 또 무언가를 하고 있다. 어떤 때는 하는 척만 하고 있다. 놀지는 않는 척, 뭔가를 하는 척.
'좋은 엄마란 이러이러해야 한다' 하는 나 스스로 내린 좁은 정의에서 자유롭지가 못하다. 누구도 내게 좋은 딸, 좋은 아내, 좋은 며느리가 되어야 한다고 질책한 적이 없는데도 나는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럴 때면 가슴이 갑갑해지고 숨이 잘 안 쉬어진다. 머리도 혼탁해지고 행동도 느려진다. 나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안타깝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불쌍하다가도 미련스럽다고 생각한다. 왜 너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니? 하고.
글을 쓸 때도 그렇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다. 남의 시간을 빼앗는 글을 쓰고 싶지 않다. 유명인사도 아닌 내가 쓴 글을 보는 사람에게 그저 일기에 불과한 글을 보이기는 너무나 송구스러웠다. 그래서 내 글은 대부분 '어떤 일을 겪었고, 어떤 것을 느꼈고, 이제부터는 이래야겠다'하는 다짐으로 끝난다. 뭐라도 깨달음이 없으면 그건 깡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제 책을 읽고 조금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이제 나는 하고 싶은 걸 하려고 한다. 별거 없음이나 솔직함이나 담담함 마구잡이 나는 그런게 좋다. 교훈 없음이 좋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책도 많이 읽고 독후감도 멋지게 쓰는 학생이었지만 사실 내가 독후감에 쓰고 싶었던 내용은 '이것에서 무엇을 알 수 있고 무엇을 얻어낼 수 있다' 이런 게 아니었다.
그러니 나는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겠다.
차도하, <일기에도 거짓말을 쓰는 사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그녀가 부러웠다. 당차다. 나도 아무 교훈 없이 행복한 글을 쓰고 싶고, 좋은 누군가가 되기보다는 마음이 가는 데로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글 또한 깨달음과 다짐으로 마무리되는 것을 보면 나는 어쩔 수 없나 싶기도 하지만 이제부터는 나를 조금 풀어주고 자유롭게 해주고 싶다. 호모 스트레스가 아니라 호모 해피엔스가 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