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호초를 따라서

feat. 웰다잉

by 수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산호초를 찾아서>는 산호초의 백화 현상을 통해 기후위기를 다룬 환경 다큐이다. 하지만 이 다큐를 보며 기후위기의 경고보다 더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것은 '한 사람의 얼굴'이었다.


산호초 1.jpg 살아있는 산호

카메라를 든 그는 매일 같은 바다의 같은 지점으로 들어가 같은 산호초를 찍는다. 형형색색의 산호는 살아있는 행성처럼 보인다. 그 다양한 모양한 신비로운 색감을 보면 산호를 사랑하는 그의 마음이 단 번에 이해가 된다. 처음 그는 농담을 섞어가며 장비를 점검하고, 여유롭게 바다로 뛰어든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하얗게 변한 산호와 텅 빈 바다가 화면을 채운다. 그의 표정도 점점 바래져 간다. 산호초를 지키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 사랑하는 존재의 죽음을 매일 기록하는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장면은 자연스럽게 인간의 삶에서 마주하는 돌봄과 상실의 얼굴을 떠올리게 했다. 병실 침대 옆에서 생명과 기억을 잃어가는 환자를 지켜보는 보호자의 얼굴.


의학적 개입의 가능성이 줄어들수록,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살게 하고 싶은 마음'과 '이제는 보내드려야 하나'라는 마음 사이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흔들린다.


산호초2.jpg 수온상승으로 백화된 산호


하얗게 바래진 산호초의 죽음 앞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적극적인 노력이다. 산호를 살리기 위해 지구의 온도를 낮추고, 탄소배출을 줄이고, 정책을 바꾸고, 사람들의 관심을 모아야 한다. 이 다큐 또한 산호초의 백화현상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여러 난관을 헤쳐나가며 촬영을 이어간다. 그들의 목표는 분명하다.

'산호초의 죽음을 멈추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


하지만 인간의 죽음은 언제나 동일한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죽음은 끝까지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어떤 죽음은 어느 순간 이후 '어떻게 함께 지나갈지'를 고민해야 하는 국면으로 넘어간다. 더 이상 살려내는 것보다 마지막 시간을 어떻게 함께할지, 어떤 말과 표정을 남길지, 누가 곁을 지킬지가 더 중요해지는 순간이 온다.


웰다잉이라고 하면 흔히 '죽음을 수용하는 태도'정도로 생각한다. 그러나 학문적, 실천적 관점으로 볼 때, 웰다잉은 죽음 그 자체보다 살아 있는 시간의 선택과 준비에 더 가까운 개념이다. 삶을 되돌아보고,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싶은지 성찰하며, 치료의 방향과 삶의 우선순위를 스스로 결정하는 과정이 여기에 포함된다.



'생태적 슬픔(ecological grief)'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사라져 가는 숲과 바다, 변화하는 계절과 풍경에 대해 인간이 경험하는 상실감과 애도의 정서를 의미한다. 여러 연구자들은 이 슬픔을 외면하면 아무런 변화도 일으킬 수 없지만, 상실을 정직하게 인식하고 감정을 공유할 때 변화와 실천의 동력이 형성된다고 말한다.


웰다잉도 이와 다르지 않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불편함을 회피할수록, 우리는 삶의 마지막 국면을 타인의 결정에 맡기기 쉽다. 반대로 죽음이라는 운명을 수용하고 죽음에 대해 똑바로 마주할 때에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가 분명해진다. 미뤄두었던 말과 관계,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 어떤 마지막을 보낼 것인지. 죽음을 인정하는 것은 포기가 아니라 삶을 다시 설계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즉, 죽음에 대한 직면은 삶(생명)에 대한 동력이 된다. 또한 남은 시간 동안 어떤 삶을 살지, 어떻게 산호초를 지켜야 할지 생각하게 하고 구체적인 실천을 이끌어 낸다.


우리는 앞으로 더 많은 상실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사라지는 계절, 병실의 침대, 제철의 과일, 사진 속 표정, 늘 푸르던 소나무, 서로의 이름을 또렷이 불러주던 시간들. 그 상실의 무게가 버거워 외면하고 싶을 때에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나는 무엇을 지키고 싶은가, 그리고 마지막을 어떤 얼굴로 바라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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