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표와 물음표

by 수키

'너무 초짜처럼 보이진 않겠지?'


시니어 클럽에서 '웰다잉 미니특강'을 하는 날이었다. 나에게는 데뷔무대인 셈이다.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은 겉모습도 꽤 중요하는 생각에 거울 앞에서 몇 번이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여유롭고 자신감 있어 보이는 표정도 연습해 보았다.


시니어 클럽으로 가는 길에 빈 손으로 가는 것이 허전해 비타민 음료도 한 박스 샀다. 손에 묵직한 것을 잡고 있으니 불안함이 조금 내려앉는 것 같았다.


시니어 클럽에 도착해 조심스럽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좀 더 활기차고 자신감 있게 인사할 걸 그랬나.

"아! 웰다잉 특강 강사님?"

"네, 인사드리러 조금 일찍 왔습니다." 멋쩍게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어서 오세요, 하면서 실장님께서 바삐 맞아주셨다.


"아직 시간이 좀 남았으니깐, 먼저 저희 관장실로 안내해 드릴게요!"


시니어 클럽 사무실 가장 안쪽에 있는 관장실에 들어서자 큰 창으로 들어온 햇살이 따사로웠다. 그리고 훤칠한 키에 서글서글한 인상, 또렷한 목소리를 가진 관장님께서 햇살보다 더 환하게 나를 맞아주셨다.


"반갑습니다. 바쁘실 텐데 여기까지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휴, 아닙니다. 저에게 더 귀한 기회 주셔서 더 감사드립니다."


아. 너무 겸손하게 말했나. 오늘은 하루 종일 입 밖으로 튀어 나는 말들에 후회가 따라붙었다. 아무리 자신감 있는 척을 해보아도 걱정이 새어 나왔다.


첫 강의다 보니 걱정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난히 걱정되었던 이유는 '웰다잉'이라는 주제 자체에 있었다. 웰다잉이 가볍거나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처럼 기관에서 요청하여 강의를 하는 경우에는 듣는 사람들은 웰다잉에 대해 들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을 수 있다. 그런 생각이 나의 자신감을 계속해서 갉아먹었다.




무대 앞에 서자 실내조명을 꺼지고 빔 프로젝터의 강한 빛이 얼굴을 향해 날아들어왔다. 앞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면면히 보이지 않았다.'일단 준비한 말만 다 하고 가자'는 생각으로 입을 열었다.


"여러분 혹시 '웰다잉'이라는 단어 처음 들어보셨나요?"


갸우뚱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지긋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보였다. 그 끄덕이는 빛을 보며 다음 말을 이어나갔다. 웰다잉이란 어떤 건인지, 왜 필요한지,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차례차례 풀어나갔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졌을 즈음 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혀 불편해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그렇지-'하는 작은 말소리를 내며 화답해 주는 사람도 있었다.


그제야 나는 알 수 있었다. 이들에게 웰다잉은 전혀 낯선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어르신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죽음을 받아들이고, 준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단지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 뿐.


난 오늘 이 자리에서 새로운 웰다잉을 알려주러 온 사람이 아니라, 그들 안에 시작되고 있는 '웰다잉'을 꺼내주러 온 사람이었다.


그동안의 걱정들이 하늘로 흩어져갔다.


강의가 끝나고 실내가 밝아지자 어르신들의 모습이 훤히 보였다. 어쩐지 밝고 편안해 보였다. 인사하면 돌아서는 등 뒤로 '강의 잘 들었어요~!' 하는 밝은 목소리도 들렸다. 다시금 어르신들을 향해 '잘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하고 인사하며 회의장 문을 나섰다.


내가 가야 할 웰다잉의 방향이 조금 더 분명해지는 순간이었다. 낯선 이름을 하고 있지만 익숙한 얼굴을 가진 '웰다잉'. 마음속에 품고 있는 그 모호한 것들을 구체적으로 만들어내고 직접 실천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그렇게 느낌표 하나와 물음표 하나를 동시에 품고 돌아왔다.

매거진의 이전글길모퉁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