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마다 주제를 정해두고 곰곰이 생각해 보기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1주 차.
이번 주에 내내 생각했던 주제는 '공감적 경청'이었다.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나면, 체했을 때 소화제를 먹고 속이 뚫리는 것처럼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나도 살면서 그런 사람들을 몇 번 만난 적이 있는데, 나는 이런 사람들을 '공감적 경청자'라고 한다.
운 좋게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도 이 '공감적 경청자'인데, 어릴 적부터 그녀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나면 늘 마음 깊이 묵혀둔 검은 실타래가 한가닥씩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왜 그들에게 이야기를 하면 이다지도 심리적 안정이 되는 걸까?
내가 생각해 본 공감적 경청자들에 공통적인 특징은 이렇다.
첫째,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는 건 나의 말을 적게 하고, 의식적으로 고개만 끄덕이는 일이 아니다. '잘' 듣는다는 것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내 몸 쪽으로 끌어오는 것을 뜻한다. 호기심을 가지고 상대방의 손을 잡고 그 이야기의 맥락을 같이 짚어 나는 것이다. 경청을 하기 위해 '상대방이 말을 하는 동안 나는 말을 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면 듣는 것이 어렵지만, '상대방이 어떤 이야기를 잘 들어봐야지.'라고 마음을 먹으면 경청이 보다 쉬워진다.
두 번째, 부정하지 않는다.
'심리적 안전기지'라는 말이 있다. 내가 느꼈던 공감적 경청자들은 기꺼이 상대방의 심리적 안전기지가 되어주는 사람이었다. 심리적 안전기지가 되어준다는 것은 한 마디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이를 분석하여 충고하거나, 조언하거나, 평가하거나, 비판하지 않는 것이다. 정혜신 작가의 '당신이 옳다'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상대방이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된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마음이 이상하고 별난 것이라고 치부하지 않고, 그 마음 자체가 옳다고 알아주는 것이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부정당하지 않고 수용받을 것이라 생각하게 되면, 사람들은 기꺼이 자신의 이야기를 편하게 털어놓게 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공감적 경청자 앞에선 꽁꽁 숨겼던 내면의 이야기가 술술 나오는 이유이다.
때로 사람들은 내면에서 피어오르는 감정을 부정하기도 한다. '내가 이런 감정을 갖는 건 내가 이상하기 때문이야.', '다들 잘 사는데, 내가 예민하기 때문이야. 나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이야.'라고 치부해버리곤 한다. 그래야 주저앉지 않고 현실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나의 감정을 이상한 것이라 낙인찍고, 회피하고 무시하며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삶에서 똑같은 장면을 계속해서 마주하게 된다. 똑같은 고통을 마주하게 된다.
내 감정을 부정하지 않고 가만히 들여다봐주는 것. 자신을 좀 봐달라고 소리치며 내 몸을 감싼 감정의 손을 잡아주는 것. 감정은 어린아이와 같다. 감정은 없애거나 무시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토닥여주고 달래줘야 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그게 힘든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공감적 경청자와 함께 자신의 감정들을 부정하지 않고 바라보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래서 공감적 경청자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내가 왜 이런 감정이 들었는지 스스로 말하며 깨닫는 경우가 많다. 그걸 알아주는 것만으로 속이 뻥 뚫리고 한결 마음이 나아질 때가 있다. 공감적 경청의 힘이다.
세 번째, 스스로에게 관대함을 가진다.
공감적 경청자들은 스스로에게 높은 잣대를 들이밀기보다는 사소한 발전에도 만족하는 사람들이었다. 비교와 경쟁이 필요 이상으로 난무한 한국 사회에 살다 보면 늘 자신에게 높은 잣대를 세우게 된다. 남들에게 인정받을만한 좋은 대학, 남들에게 인정받을만한 좋은 직장, 좋은 아파트... '타인보다 외적으로 더 나아 보이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 사람들은 늘 노력한다. 비교로 얻은 우월감의 한계는 내 삶이 좌절하는 상황이 왔을 때 스스로에게 패배자라는 이름표를 붙이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신이 아니기에, 살면서 예기치 못하게 연약해지는 때가 반드시 온다. 그때가 되었을 때, '저 나이에 저 정도밖에 성취한 게 없다니. 무능한 사람이구나.' 언젠가 내가 타인을 평가하던 그 시선을 그대로 나 스스로에게 가져오게 된다는 것이다.
타인과의 비교는 효과가 빠른 약처럼 나에게 쉽게 우월감을 느끼게 해 준다. 하지만 그것이 나를 해치는 치명적인 독이 될 수도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건강한 자존감을 갖기 위해 나는 우리 모두 스스로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작은 발걸음이라도 뗀 스스로에게 기꺼이 칭찬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변에서 작은 일을 이뤄냈다고 뿌듯해하는 사람을 '고작 저 정도로...'라고 한심해하거나 무시할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에겐 크고 작은 성취임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내가 스스로에게 관대해지기 시작해야 타인에게도 관대해질 수 있다. 나와 타인에게 관대해지는 것은 내 삶의 불편한 것들을 하나씩 없애는 과정이다. 편안해지는 과정이다.
공감적 경청이란 어떤 것인지 정리해 보고, 나도 실생활에서 공감적 경청을 하기 위해 노력했던 한 주였다. 공감적 경청을 할수록 스스로 편안해짐을 느꼈고, 상대방과 진실로 교감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시간 자체가 따뜻한 장면으로 기억 속에 남았다. 나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스스로에게 관대함을 가지는 것이다. 그간의 잣대들을 한참 아래로 낮추고, 나를 탓하지 않고 인정해 준다는 것은 참 어렵다. 하지만 나 스스로 관대해져야 타인에게도 진실로 관대해질 수 있고, 타인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공감이 가능함을 깨달았다. 또한, 스스로 관대해지는 과정은 삶이 한결 편안해지는 과정이다.
앞으로도 인생이라는 길을 한참을 걸어 나가야 하는 내가, 힘들이지 않고 오래 걸을 수 있도록. 나 스스로에게 관대해지는 연습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