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관대하다는 것

by 제인



여름밤은 묘한 매력이 있다. 원래도 나가는 것을 좋아하지만, 여름의 밤엔 도무지 방 안에 있을 수가 없다. 가벼운 옷을 입고 무거운 머리를 이고 밖으로 나가 한참을 걷는다. 걷는 길목마다 생각들을 한 움큼씩 덜어낸다. 그렇게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바닥에 버렸던 고민들은 금방 증발되어 사라졌다. 머리도 걸음도 한결 가볍다.


요새는 교육대학원에 원서를 쓰고, 면접을 보고 있다. 심리학을 공부하겠다고 지난 게시물에 썼던 것 같은데 벌써 1년이 지나 대학원에 입학할 수 있는 요건을 갖췄다. 대학원을 준비하며 비싼 돈을 내고 전공 시험 대비 강의도 듣고 스터디도 하고 있다. 오랜만에 공부를 하려니 적은 양도 머리에 넣으려면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도 얼추 조금씩 공부의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대학원을 준비하며 가장 고민이 되었던 것은, '과연 내가 상담교사에 적합한 인물인가?' 라는 지점이다. 나는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다양한 이유로 혼란 속에 보냈다. 그리고 상담 공부를 하게 되며, 그간 심리적 어려움이라고만 표현했던 나의 증상들에 하나하나 이름표를 달아줄 수 있었다. 심리적 부적응의 원인, 치료 방법 등을 달달 외우면서도 나는 스스로에게 적용하기도 어려운 이 이론들을 습득하여 현장에서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나는 경청도 잘 못하는데, 성격도 더러운데... 말도 잘 못하는데... 내가 좋은 상담교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마음속에서 내내 피어났다.


모순적이게도, 공부를 하며 다시금 깨달은 것 중 하나는 내가 나에게 얼마나 박한 사람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사람의 기준이란 것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스스로에게 높은 잣대를 들이미는 사람은 타인에게도 높은 잣대를 들이댄다. 아주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나는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나보다 능력이 없어 보이는 사람에 대해 마음속으로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또 회사에서의 경험으로 힘들어하는 이를 보면, '누구나 다 겪는 일인데 뭐 저렇게 사소한 걸로 저렇게 찡찡대지?' 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다시 살펴보면 그건 내가 나에게 들이대는 잣대였다.


나는 상황에서의 어려움도 필요 이상으로 스스로에게 책임을 전가하여 해결하곤 했다. 그 기저에는 어떤 성취를 했을 때 '넌 운이 좋다.'라고 일관되게 반응했던 선생님과 가족들에 대한 기억이 있었다. 나의 성취에 대해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했던 기억들이 쌓여, 나는 남들이 소위 말하는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입사했을 때도 그것이 나의 성취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 해.',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할까?', '내가 부족하다는 걸 들키면 안돼.',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이 일을 했다면 훨씬 잘했을 텐데.' 나조차 나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고들. 사실 아직도 나는 어떤 일을 맡게 되면 자동적으로 스스로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며 작아지게 된다. 잘하고 있음에도 스스로 칭찬을 하는 것이 어렵다. 그것이 아마 나의 잣대일 것이다. 어릴 적부터 아주 예리하게 날을 갈고 갈았던 그 잣대로 나를 재단하고, 타인을 재단하고... 그러다 보니 타인의 어려움에 대해 쉽게 '겨우 그런걸로?'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일 테다.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에서는 우월성 콤플렉스라는 개념이 있다. 이러한 우월성 콤플렉스의 기저에는 강한 열등감이 숨겨져 있다고 한다. 극복하지 못한 열등감. 어쩌면 나도 일종의 우월성 콤플렉스가 있을지도 모른다. 어릴 적부터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아야 한다며 순위를 매기는 것을 반복해 온 우리들에겐, 타인과 비교하지 않고 스스로를 칭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처럼 보인다. 칭찬보단 질책과 비판을 자양분 삼아 독하게 자라야만 '잘 사는 것'이라고 추앙하는 한국 사회에선, 우월성 콤플렉스가 사회 만연에 나타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아주 가끔 잠에 들기 전 아주 관대한 나에 대해 생각해보곤 한다.


'힘들면 힘내지 않아도 괜찮아.'

'너는 충분히 쉬어야 해.'

'너의 속도로 가면 돼. 누구와 비교할 필요 전혀 없어.'

'너는 스스로 답을 찾는 사람이야. 그리고 그 답은 항상 정답이야.'

'아주 잘하고 있어.'

'있는 그대로의 네가 아름다워. 도전하고, 좌절하는 너의 모습까지도.'

'오늘도 살아내느라 고생했어.'


지금 시점에서 지니가 나에게 소원 하나를 들어준다고 하면...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관대한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빌고 싶다. 힘을 빼야 물에 둥둥 뜰 수 있게 되는 것처럼, 삶에서 힘을 빼고 나만의 속도로 떠다니고 싶다. 그 누구나 죽음이라는 종착지를 가지고 있는 우리의 삶에서 후회하지 않는 방법은 그저 삶을 사랑하는 것. 삶을 사랑하려면 느린 속도로 주변의 것들을 관찰해야 한다. 깊게 바라보는 대상엔 속절없이 사랑에 빠져버리는 것이 인간이니까. 그렇게 사랑하는 것들을 많이 만드는 것이 참된 삶 아닐까. 상담교사가 되기까지 나는 스스로에게 관대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나를 넘어 타인을 품어주는 말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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