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결제를 위해 18단계를 거쳐야 했던 몇 년 전을 기억하시나요?
스마트폰을 통해 결제를 하려면 인증에 인증을 거듭하던 몇 년 전을 기억하시나요? 이제는 모바일 간편결제가 너무나 당연해졌지만, 그 당연함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끈질긴 노력을 해 온 사실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카카오페이는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해 작지만 위대한 변화를 이끌어 내며 어엿한 기업으로 성장했죠. 그 시작은 어땠는지, 어떤 에피소드들이 있는지 CEO를 맡고 있는 Alex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Walletless’를 지향하는 카카오페이인데, 역설적이게도 지갑을 갖고 다닙니다. 아직 모바일 결제 환경이 완벽하게 갖춰진 건 아니라서 지갑을 놓고 다닐 순 없더라고요. 법인카드와 교통 요금을 지불할 수 있는 체크카드 한 장, 신분증 정도를 넣고 다닙니다. 지갑을 갖고 다니면서 겪는 불편함을 알아내는 것도 제 일의 하나예요. 우리가 뭘 바꾸면 좋을지 직접 느껴야 하니까요. 카카오페이를 통해 교통카드 태그나 신분증 제시를 할 수 있도록 고민하는 중입니다.
‘Cashless’ 사회는 이미 성숙기에 접어든 것 같아요. 경조사의 경우 아직 현금을 쓰긴 하는데, 일부 결혼식장에서는 축의금 접수대에 QR코드가 인쇄된 키트를 놔두기도 하더라고요. 새로운 풍경이죠.
카카오페이는 2014년도에 카카오의 사내 프로젝트로 시작됐습니다. 사업을 공격적으로 확장하려고 2017년도에 분사를 결정했죠. 분사 당시 60명의 크루들이 함께 했는데, 이제는 460명이 다니는 회사가 됐어요. 간편결제뿐만 아니라 투자나 보험, 인증 등 다양한 서비스를 다루고 있죠.
저는 2011년 초 당시 벤처기업이던 카카오에 합류했습니다. 새로운 서비스들을 선 보였고, 카카오페이도 그중 하나였어요. 하고 싶은 것을 하나하나 하다 보니 개발자 출신의 비즈니스 기획자가 됐고, 한 회사의 CEO 역할도 하게 됐네요.
초기에 합류했던 이전 직장이 상장하는 과정을 함께한 것이 직장생활의 시작이었어요. 이후 삼성 SDS를 거쳐 카카오에 합류했죠. 당시 저는 스마트폰 음성 통화 애플리케이션 기술 지식을 갖고 있었어요. 카카오에 합류해 세 명이 3개월 동안 밤새면서 ‘보이스톡’을 만들었죠. 보이스톡을 출시하면서 변화에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이해관계자들의 반발을 조율하는 사업적 기술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제 사업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개발 직군에서 사업 직군으로 커리어를 바꿨어요. ‘카카오톡 선물하기’에서 신규사업팀을 맡았죠. 요즘이라면 말도 안 되는 숫자지만, 당시 결제 실패율은 50%가 넘었습니다. 그런데도 매출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고요. 실패율의 일부만 성공으로 돌려도 매출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는 구조가 보였어요.
당시엔 매 결제 때마다 18개 화면을 넘어가는 구조가 표준이었어요. 사람들은 단계를 거칠 때마다 실수를 하거나 귀찮아서 포기했죠. ‘바꿔보자’라고 마음먹고 공인인증서 없이 결제하는 간편결제를 준비했어요.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았습니다. 두 달 만에 프로토 타입이 나왔죠. 규제를 푸는 게 어려웠어요. 이 방식이 안전하다는 것을 금융감독원을 비롯해 7개 카드 사업자들에게 이해시키는데 1년 넘는 시간이 걸렸어요.
카카오페이 서비스 오픈은 4개 카드사와 함께 하려고 준비했었어요. 이런저런 이유로 다 빠지고 한 카드사만 남은 상황이 왔죠. 그 회사에서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올 텐데, 우리는 가장 먼저 새벽을 맞겠다”라고 결정해 주셔서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었어요.
이후 핀테크 바람이 불었고, 세계시장에서 한국 금융의 경쟁력이 낮다는 문제의식도 공론화됐죠. 3~4년 전부터 분위기는 많이 바뀌었어요. 오픈뱅킹이 제도화됐고 전자금융거래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도 있죠. 카카오페이가 사업을 시작할 당시보다는 여러모로 좋은 환경이 갖춰지고 있어요.
개인적 바람인데요, 정부의 규제에 관한 마인드가 바뀌면 더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특정 기술이나 방식에 관해 디테일한 규제를 만들기보다는, 사고가 났을 때 철저하게 사용자에게 보상하는 방식으로 감독체계가 바뀐다면 어떤 일들이 생길까요? 최신 기술들이 활발하게 개발되는 계기가 될 거고 시시각각 규정을 손질해야 하는 수고도 덜 수 있을 거예요. 여전히 한국에서 지위가 공고한 공인인증서가 주는 불편함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겠죠.
젊은 층에겐 무척 익숙한 카카오페이지만, 장년층에겐 여전히 낯설고 어려운 ‘신 문물’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4월 23일 DMC미디어가 내놓은 '2019 모바일 간편결제 서비스 이용 행태’ 보고서에 따르면 20대와 30대 80% 이상이 간편결제를 이용한다고 답했지만, 40대로 넘어가면 60%대로 이용률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죠. 다른 리포트를 통해서도 장년층과 노년층이 테크핀 서비스에 관한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 경제적-사회적 여건으로 인해 발생하는 정보 격차)’를 겪고 있는 것으로 관찰됩니다.
눈 앞에서 보여드립니다. 돈을 보내죠. 받으면 어떻게든 이해하고 사용하시더군요. 재밌는 점은 몇천 원 단위를 보내 드리면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만원 넘게 받으신 분들 중 한 번도 실패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요.
이해하기 쉽게 금융을 풀어서 설명해준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안전하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어요. 카카오페이에서 사고 났었다는 이야기 들어본 적 있으세요? 조용한 것이 안전한 것이죠. 철저한 보안을 반증하는 예시라고 생각합니다.
서비스에 가입할 때 많은 항목에 체크하도록 한다거나, 결제할 때마다 귀찮고 어렵기만 한 여러 단계가 존재했던 것들은 사용자를 위한 장치일까요, 사업자의 법적 책임에 집중한 결과일까요? 기존의 보안은 사용자들에게 질문을 거듭해 ‘앞 단’에서 많이 거르는 방식을 택했죠. 저희는 기존 금융기업이 쓰는 보안 솔루션은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고, 이 부분은 ‘뒷 단’에 배치해 굳이 드러내지 않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AI 기술을 접목한 백엔드 보안 강화 방식을 사용하고 있어요. 사용상의 편리함은 극대화시키지만, 이상 거래 패턴이나 이상 징후가 감지될 때 개입하는 거죠. 이상거래감지시스템(FDS: Fraud Detection System)이라고 부르는데요, ‘룰’을 입력해놓고 그에 맞지 않는 거래만 막던 방식보다 훨씬 안전해요. 지난 5년간 이 분야에 꾸준히 투자해 왔습니다.
두 비즈니스 모두 비대면 채널의 성장세는 꾸준해요. 종전에 오프라인 주도해 오던 영역이죠. 투자는 전형적인 고관여 상품이에요. ‘메신저 안에서 투자 상품을 팔 수 있을까?’, 의문은 있었죠. 뚜껑을 열었더니 매일 거의 모든 상품들이 완판 되고 있어요. 투자자들은 “쉽고 편리하다”는 반응을 내놓으시고요. 쉽고 편하게, 그리고 안전하게 만들면 투자 상품도 얼마든지 팔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어요. 자산가들이 주로 참여하던 고관여 투자 상품을 ‘언번들링(Unbundling. 나눠 팔기)’해서 소액 투자도 가능하게 만들었더니 저관여 영역으로 바뀐 거죠. 지금은 P2P상품을 주로 다루지만 곧 펀드나 채권 등 제도권 상품에도 투자할 수 있게 됩니다.
보험은 70% 정도 오프라인 채널에서 판매되고 있어요. 점점 더 온라인이나 모바일 판매 비율이 높아질 거예요. General Agency라는 자격을 획득하는 차원에서 기존에 이 사업을 잘해나가고 있던 사업자인 인바이유를 인수한 것입니다.
자동차 보험, 반려동물 보험처럼 복잡성이 덜 한 상품들의 가격 거품을 빼고 가입 절차를 간편하게 만들어서 먼저 내놓았어요. 규제나 기술적 측면에서 몇 가지가 해결되면 복잡한 상품도 온라인에서 판매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해요. 영국의 경우 이미 보험시장의 50%가 온라인으로 넘어갔거든요.
알렉스는 몸 담았던 기업이 코스닥에 상장되면서 스톡옵션을 매각해 차익을 실현했고, 카카오에서도 같은 일을 겪었습니다. 회사원으로서 누릴 수 있는 굉장한 행운이 두 번이나 따른 거죠. 카카오페이 역시 성장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가 생각하는 조직 문화와 개인의 성장, 그리고 분배에 관한 생각이 궁금했습니다.
2년 남짓한 짧은 시간에 조직이 8배 규모로 커졌어요. 비즈니스를 처음 시작할 때 좋았던 문화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다각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인재 영입 과정과 온보딩(On Boarding. 카카오에서 신입 크루들의 조직 적응을 원활하게 해 주는 프로그램) 과정에 특히 신경을 쓰는 이유죠. 구성원 수가 2백 명이 될 때까지는 모든 면접에 제가 직접 참여하기도 했어요.
전문성, 자기 주도성, 도전, 다양성, 헌신이라는 핵심가치 5개 기준으로 지원자들을 영입하고 연말 평가와 온보딩 트레이닝 역시 그 기준으로 진행하죠. 매달 전월 입사자를 대상으로 한 이틀간의 온보딩 워크숍이 열리는데, 여기에 저를 포함한 모든 경영진이 참여해요.
종전에 존재하지 않던 서비스잖아요. 덕분에 틀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죠. 철저하게 사용자 관점에서 많은 고민을 하거든요. 그리고 상위 기획을 하거나 만드는 과정에 개발자들이 리드하고 참여하는 경우가 많아요. 다른 기업의 개발자들이 워터폴(Water Fall) 방식으로 하달받는 경우가 많은 것과 대비되는 부분이죠.
긴 시간 일 하면서 함께 만들어낸 이익을 더 많이 공유하고 싶어요. 그런 면에서 상법상 스톡옵션 발행한도가 10%인 점은 아쉽습니다. 회사가 잘 됐을 때 구성원들이 더 많이 가져갈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두면 보다 몰입할 수 있으니까요. 열심히 하면 인생이 바뀐다는 게 피부에 와 닿으면 보다 도전적으로 움직일 수 있겠죠.
탄력적입니다. 카카오페이는 테크핀 회사를 표방해요. 기존의 핀테크는 기술이 금융을 서포트한다는 관점인데, 테크핀은 기술이 금융을 리드한다는 개념이거든요. 기술 기업으로의 포지셔닝이 중요하죠. 하지만 기술이 모든 것에 앞선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유저의 니즈를 해결하는 걸 핵심으로 봐야 하죠. 대체로 IT기술이 해결의 실마리를 쥐고 있지만, 규제나 사업적 이해관계 때문에 안 되는 게 있으면 거기에 역량을 투여해야죠.
일의 시작과 끝을 촘촘히 아는 보스를 일컬어 흔히 ‘그립(Grip)이 세다’고 말합니다. 아는 만큼 시시콜콜 간섭을 하기 때문이죠. 카카오페이에 관한 한 누구보다 일의 AtoZ를 잘 아는 알렉스와 이야기 나누는 동안 ‘강한 그립’은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 대신 권한을 부여받은 ‘차세대 알렉스’들이 여러 사업을 발 빠르게 전개하고 있었죠. 급속히 커진 조직 규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속도감과 다이내믹함을 갖고 있는 비결로 보입니다.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일들을 해 온 알렉스는 입버릇처럼 “실무자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걸 하세요”라고 말합니다. 작지만 당연하게 여겨지는 불편에 의문을 던지고 끈질기게 변화와 혁신을 시도하는 DNA를 탑재한 카카오페이의 다음 행보가 더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