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게 카카오프렌즈와 니니즈의 매력
이용자 대신 감정 표현을 하기 위해 탄생했다. 카카오톡의 채팅창에서 데뷔했다. 세계관을 갖고 태어났지만, 이용자들은 저마다의 자아와 이야기를 투영했다. 상상의 나래를 타고 캐릭터들은 힘을 얻었다. 계획된 흐름보다 예상 밖의 일들이 훨씬 많이 일어났다.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캐릭터 카카오프렌즈와 카카오의 두 번째 캐릭터 IP 니니즈에 관한 설명이다. 채팅창에서 친숙하게 만나는 캐릭터들이지만, 주로 대화 수단이자 감정 대리인으로 쓰였기에 이들에 관해 알려진 이야기는 많지 않다. 카카오 IP(Intellectual Property) 콘텐츠팀을 노크해 양대 캐릭터 IP들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에디터(이하 E) _ 카카오프렌즈의 서사를 이야기할 때 캐릭터별 콤플렉스가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것 같아요. 라이언의 경우 거기에 더해 위안과 듬직함 같은 설명이 붙죠. 이런 요소들이 이용자들의 큰 반응을 불러일으킨다고 보시나요?
체이스(Chase. 이하 C) _ 자주 거론되지만 이용자들에게 중요한 요인은 아닐 것 같습니다. 콤플렉스 등 캐릭터의 성격을 인지하는 분들의 비중이 더 작거든요. 친근하거나 조금은 허술해 보이는, 이른바 ‘B급 정서’의 맥락이 더 중요하게 작동한다고 생각해요. 채팅창이라는 매체 특성상 캐릭터와 교감하면서 나의 이야기를 집어넣게 되니까요.
E _ 카카오톡이라는 매체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요, 최근 몇 년간 카카오프렌즈는 해외 행보도 이어가고 있잖아요. 가장 강력한 무기인 채팅창 없이 해외에서 활동 중이란 건데, 어드벤티지가 없는 그런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고 있나요?
C _ 카카오톡과 달리 해외 메신저들의 이모티콘 마켓은 완전 개방형에 가까워요. 누구나 진입할 수 있지만, ‘메이저’가 되기 어려운 환경이기도 하죠. 한국적 정서와 차이 나는 부분도 많고요. 2년 전부터 해외 메신저에 카카오프렌즈를 선보이고 있지만, 한국에서처럼 빠르고 뜨거운 반응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죠. 그렇다고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하는 건 아닙니다. 다행히 ‘한국에서 인기 있다’는 수식어가 프리미엄 이미지로 연결되는 곳들이 많거든요. 중화권이나 동남아, 일본에서 오픈한 스토어들에 현지 반응이 뜨거운 이유죠. 하지만 국내에서처럼 카카오톡이라는 매체의 도움을 받을 수 없으니,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계속 건네야겠죠.
죠르디나 라이언에 관한 숏 폼(Short Form) 콘텐츠를 내놓는 이유입니다. 해외 팬들 뿐만 아니라 국내 이용자들에게도 이모티콘만으로 표현하지 못한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들려 드릴 수 있어요. 이밖에도 세대와 국경을 초월해 캐릭터와 공감할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과 출연 플랫폼의 다각화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E _ 라이언이 카카오프렌즈의 여덟 번째 멤버로 합류하기까지 3년 2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어요.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들려주세요.
C _ 카카오프렌즈는 작은 화면에서 감정표현을 돕기 위해 등장했어요. 종전의 캐릭터들에 비해 액션들이 과장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특징인 거죠. 이용자 입장에서 보면, 과묵한 사람이나 시니어층이 채팅창에 쓰기엔 부담스러운 면이 있었어요. 이런 분들도 편하게 보여줄 수 있는 듬직하고 절제된 친구가 라이언이죠. 카카오프렌즈에서 조언자이자 조연 역할을 맡을 예정이었죠. 창작 과정에서 정말 많은 고민과 토론을 앞세우지만, 이용자 반응만큼은 예상 밖의 일인 것 같습니다. 라이언은 지금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주연이 됐잖아요.
E _ 대한민국 어딜 가나 라이언이 보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인데요. 이미지 소모를 극복하고 장기적 성장을 도모하는 전략이 있나요?
C _ 단순히 많이 보인다고 소모되진 않는다고 진단해요. 이미 양적으로 터진 걸 되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다만, 맥락 없이 콘텐츠와 제품이 생산되는걸 가장 경계하고 있어요. 한쪽에서는 이들이 갖고 있는 스토리를 알릴 수 있도록 맥락을 만들어주고 있고요. ‘라이언은 왜 갈기를 열망했을까?’와 같은 이야기를 알려주는 거죠.
E _ 카카오프렌즈를 만난 지 벌써 8년이 됐어요.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기억나는 장면 몇 가지만 꼽아주실래요?
C _ 캐릭터를 보는 산업계의 시각이 확연히 달라진 점을 꼽고 싶어요. 성공 여부를 떠나서 여러 기업들이 ‘간판’ 격으로 캐릭터를 앞세우게 된 동기가 카카오프렌즈였음은 분명하죠. ‘~프렌즈’라는 캐릭터 작명법이 흔해진 점도 기억에 남습니다. 단일 캐릭터가 아닌 캐릭터 군으로서 성공한 사례는 아마도 카카오프렌즈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테지만요. 카카오프렌즈는 카카오톡이라는 전무후무한 매체의 성장 과정에 합류했고, 경쟁자 수도 적었기에 쑥쑥 클 수 있었어요.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요? 이제는 캐릭터 군을 이끄는 강력한 주인공이 필요한 시기가 왔어요. 카카오프렌즈도 라이언이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한 단계 올라섰고, 니니즈에서는 죠르디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어요.
E _ 최근에 등장한 춘식이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라이언 인스타그램에서 데뷔했던데, 언제 활동 반경을 넓히게 되나요?
C _ 일곱 카카오프렌즈는 8년, 라이언은 5년 정도 우리 곁에 있었어요. 그간 보여줄 수 있는 정말 많은 것들을 표현했죠. 춘식이는 새로운 서사와 생동감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을 만난 방식은 종전과 달랐어요. 이모티콘이 아닌 숏 툰(Short toon)으로 수줍게 등장했죠.
‘‘냥줍’을 했어요. 집에 데려갈까요 말까요?’, ‘고양이 처음 키우는데, 뭐 좋아해요?’, ‘이름은 뭐가 좋을까요?’. 이런 질문에 카카오프렌즈의 팬덤들이 반응했고, 그걸 수용해 춘식이의 자아가 만들어지고 있어요. 랜선 집사, 랜선 이모들이 수천 개의 댓글로 춘식이를 키운 거죠. 만약 숏 툰 연재 기간 동안 반응이 좋지 않았다면 춘식이는 잠깐 들렀다 떠난 길냥이가 됐을 수도 있었어요. 이젠 떠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단계라고 판단하지만요.
춘식이가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펼쳐갈지,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어요. 곧 이모티콘과 굿즈로 여러분들을 만나러 갈 예정입니다.
E _ 니니즈 이야기 좀 해볼까요. 카카오프렌즈가 하늘을 찌를듯한 인기를 얻던 2017년 11월에 데뷔했어요. ‘선배’들이 너무 잘나서 태생적으로 큰 부담을 안고 있었을 것 같은데, 세상에 나온 과정과 요즘의 이야기들을 들려주세요.
C _ 오만하게도, 당연히 잘 될 줄 알았어요. 카카오톡의 매체력이 있으니까 프렌즈처럼 폭발적인 인기를 얻을 거라 예상했죠. 오판이었습니다. 카카오프렌즈 데뷔 때와 달리 대체제가 많았고요, 이모티콘으로써 감정표현에 최적화된 구성도 아니었거든요. 보편적 정서를 표현 하진 않으니까요. 게다가 데뷔하자마자 ‘폭력성이 강조됐다’는 등 논란을 맞게 돼 혼란스러웠어요. 제작자 입장과 이용자의 입장이 확연히 다르다는 걸 크게 느꼈죠. 내부에서는 톰과 제리 정도의 티격태격하는 느낌이라고 생각했어요. ‘(반듯한 회사) 카카오가 하는 건데 이래도 되나?’라는 높은 기준이 있다는 걸 간과했었습니다.
그런 과정들을 겪으며 캐릭터들의 성격이 다듬어지게 됐고, 이제는 카카오프렌즈가 표현하지 못하는 니치(Niche)한 영역들을 니니즈가 소화해주고 있어요. 여담인데요, 니니즈 중에서 죠르디가 가장 인기를 많이 얻을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앙몬드나 스카피, 케로 베로니 등을 꼽은 사람이 대부분이었죠. 하지만 ‘짠내 나는 취준생’ 콘셉트의 죠르디가 청년-청소년층과 공감대를 형성했고, 창작자들이 표현하려고 했던 구상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건 카카오의 캐릭터들에 국한된 특징일 수도 있어요. 이용자 반응에 호흡하며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가는 캐릭터라니, 허술한 측면이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모습에 여러분들이 친근감을 느끼고 큰 틀에서는 ‘차갑지 않은 IT회사 카카오’의 이미지를 자리 잡게 하는 거니까요.
E _ 카카오프렌즈가 사는 비밀의 숲, 니니즈가 사는 스노우 타운, 이런 배경들은 어떻게 생겨났나요?
C _ 일종의 판타지적인 설정이었어요. 하지만 이 또한 이용자 반응에 따라 조금씩 현실적인 장치들을 갖추게 됐죠. 죠르디 삶의 배경에서 편의점이나 취업 준비와 같은 맥락이 자주 보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 입니다. 카카오프렌즈 역시 비밀의 숲이라는 배경에 자주 등장하지 않아요. 대신 서울 속 라이언을 쉽게 볼 수 있죠. 카카오의 캐릭터 IP들을 통해 서울의 힙(Hip), 한국의 흥 같은 정서적 교감을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E _ 카카오프렌즈에 비해 니니즈의 주력 팬덤은 비교적 저 연령대 여성 중심이라고 들었어요. 팬덤을 보다 넓힐 계획은 없나요?
C _ MZ세대에 집중해서 소통하려고 해요. 좁고 깊은 팬덤이 가진 힘이 있거든요. 최근 청소년층 필수품으로 빠르게 자리 잡은 ‘카카오뱅크 mini’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죠. 니치한 매력, 자신들의 소소한 일상을 대변해주는 듯한 친근함이 니니즈의 저력입니다. 카카오프렌즈가 글로벌을 향해 넓은 팬덤을 안고 간다면, 니니즈만의 역할은 따로 있다고 봐요.
E _ 니니즈가 “니니~ 니니~”하는 소리를 내긴 하지만, 두 캐릭터 IP들은 대사가 없잖아요. 서사를 풀어내기에 제약이 많을 것 같은데, 앞으로도 계속 말은 하지 않나요?
C _ 지금까지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말을 못 한다고 못 박은 적은 없어요 (웃음). 큰 맥락에서 필요하다면, 가능성은 열려 있습니다. 두 캐릭터 IP들이 한 공간에 있는 모습도 어찌 보면 금기시되는 일이지만 라이언-죠르디가 이모티콘 세트로 나온 적도 있거든요. 지금까지 여러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었던 중요한 사실이 있어요. ‘이건 된다, 안된다’ 섣불리 예상하는 게 무의미하다는 점이죠.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고, 그게 뭔지 모른다는 게 카카오프렌즈와 니니즈의 매력입니다.
E _ 이미 많은 것을 이룬 두 캐릭터 IP지만, 앞으로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한 과제도 많을 것 같아요. 지금의 우선순위는 무엇인가요?
C _ 이모티콘 세상 밖에서 여러분들을 만날 기회를 더 많이 가지는 거요. 이제 10년 남짓 된 모바일 세상이지만, 정말 많은 게 바뀌었잖아요. 볼거리 즐길 거리가 엄청나게 늘어났고, 이모티콘 세상도 아주 커지고 복잡해졌어요. 예전에 큰 성공을 거둔 방식일지라도, 지금은 아무런 반응도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캐릭터가 아닌 외부의 IP들과 협업한다던가, 우리의 내러티브를 좀 더 촘촘하게 보여줄 수 있는 여러 방안을 구상 중이에요.
체이스는 IP콘텐츠팀에 관해 “웃어넘기고 말 법한 소소한 것들로 가치를 만드는 조직”이라고 설명했다. 그 ‘소소한’것들은 알게 모르게 카카오만의 강한 힘이 되고 있다. 고도화된, 그래서 냉정해 보이고 어렵게 느껴질 법한 IT기업의 전형적인 이미지에서 카카오가 멀찌감치 떨어질 수 있는 원동력인 캐릭터 IP. 이들은 정해진 것 없이 이용자들과 호흡하며 즐겁게 움직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