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페이지가 그려가는 더 큰 유니버스(Universe)
국내 최대 프리미엄 웹 리터러처(Web Literature) 플랫폼. ‘기다리면 무료’라는 획기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무료 콘텐츠로 인식되던 웹툰, 웹소설을 중심으로 국내 콘텐츠 시장의 대 변혁기 유도. 2020년 연간 거래액 5천억 원 돌파 예상. IP 스토리 비즈니스의 본진인 미국과 일본을 비롯해 중국과 동남아 등지에서 활약.
2020년 현재 카카오페이지에 관한 간략한 설명이다. 짧은 설명 만으로도 존재감을 뿜어내는 기업이지만, 카카오페이지는 카카오 공동체 가운데 가장 산전수전을 많이 겪은 회사이기도 하다. 숱한 위기를 지나온 두 크루를 만나 카카오페이지의 시작과 좌절, 다시 뛰는 용기, 그리고 글로벌 플레이어로서의 비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카카오페이지의 발원점은 조이(Joy. 현 대표이사)와 찰리(Charlie. 현 플랫폼 총괄), 제리(Jerry. 현 CSO), 세 청년이 콘텐츠 비즈니스로 창업을 해보자며 의기투합한 2005년의 어느 날에서 찾을 수 있다. 주중에는 각자 회사 생활을, 주말이면 모여 사업 기획을 하던 시간들이 쌓여갈 때쯤 국내에 아이폰이 도입됐다. 산업계에 대 변혁기가 온 것을 직감한 셋은 2009년 말 창업을 결심했다.
“조이가 사업적 조언을 구하려고 멘토이던 브라이언(Brian)을 찾아갔어요. 두 가지 ‘C’에서 큰 변화가 있을 거라는 예상을 하셨죠. 첫째는 전화나 PC 메신저, 문자, 이메일 등으로 분절되어 있던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수단이 모바일에서 통합되면서 기회가 있을 것이다. 둘째, 앱스토어 생태계에서 콘텐츠(Content) 혁명이 있을 것이라고요. EIR(Entrepreneur in Residence) 형태로 아이위랩(카카오의 초기 법인명)에 들어와서 콘텐츠 비즈니스를 할 것을 권유받았고,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제리의 회상이다.
이내 카카오톡이 등장했고 작은 스타트업이던 아이위랩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카카오톡에 모든 역량을 투여해야 했다. 당면과제에서 제외된 콘텐츠 비즈니스는 분사를 해서 진행하는 편이 낫겠다는 결정이 났다. 2010년 여름, 포도트리라는 이름의 법인이 세워졌다. “학습물, 책, 장난감 등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앱들을 선보여 글로벌 시장을 조기 공략한다”는 비전이 있었다.
첫걸음은 빛났다. 유명 출판사와 협업해 위인전 등 교육 콘텐츠를 내놨고, 이후 출시한 영단어 앱은 앱스토어 1위에 올랐다. 이 앱을 일본 출판사와 보강해 내놓은 것이 현지 앱스토어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법인 설립 후 1년이 안됐을 때 출시한 앱은 50개를 넘어섰다. 개발자 중 사번 2번으로 입사했던 캐슬(Castle)은 “힘든 줄 모르고 불타오르며 일하던 시절”로 그때를 기억한다. 전 직장에서 서버 개발 일을 하던 캐슬 역시 아이폰의 등장을 보며 새로운 큰 기회를 상상하며 합류한 터였다. 그는 “개발자 한 명이 하나의 앱을 맡았었고, 개개인이 하나의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하는 스튜디오 같은 느낌으로 일했다”라고 회상했다.
신명 나는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1달러 앱으로 1억 다운로드’를 일궈내겠다는 구상은 급속도로 치열해지는 앱스토어 경쟁환경에서 많은 마케팅 비용을 요구했다. 수익성과 구성원들의 사기가 동시에 떨어졌다. 2012년 초, 생사의 기로에서 포도트리는 ‘체인지’ 워크숍을 열어 사업 방향을 ‘모바일 콘텐츠 오픈 마켓 플랫폼’으로 단순화했다.
글로벌 사업을 꿈꾸며 합류한 동료들이 대거 이탈했다. 제리는 그때를 “창업 후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라고 기억한다. 고통스러웠지만 생존을 위한 움직임은 멈출 수 없었다. 사업 계획서를 쓰고 또 쓰는 나날이 이어졌다.
반년이 지나 포도트리는 카카오에 콘텐츠 거래 매개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을 제안할 수 있었다. 종전처럼 콘텐츠를 직접 판매하는 방식은 지웠다. 대신 파트너들이 포도트리의 저작 도구를 이용해 손쉽게 콘텐츠 제작과 패키징까지 할 수 있도록 했다. 카카오톡의 트래픽과 친구 추천 장치를 활용할 수 있다는 소식에 800개 넘는 CP(Contents Provider)가 참여했다. 거장 만화가의 신작 독점 연재, 대규모 투자 유치도 뒤따랐다. 카카오페이지 1.0의 화려한 출발이었다.
끓어오르던 분위기는 이내 찬물을 뒤집어썼다. 2013년 4월 9일 론칭 첫날 매출은 100만 원. 일주일 째가 되자 하루 매출은 10만 원대를 기록했다. ‘카카오톡 레버리지’는 일장춘몽이 됐다. 제리는 “카카오가 하니까 새로워야 한다는 강박이 컸습니다. 당시 스마트폰 스펙이나 통신 환경에서는 이용자들이 부담을 느낄 법 한 대용량의 콘텐츠들까지 준비했고, 사업 주체인 우리뿐만 아니라 콘텐츠 공급자들까지 큰 타격을 입었어요. 저작 툴에도 부족한 점이 많았습니다”라고 말했다.
포도트리는 카카오페이지 론칭 한 달 만에 CP사들을 모아 놓고 플랫폼 개편을 선언했다. 한편으로는 야심 찬 첫출발의 실패를 자인하고, 망연자실한 파트너들의 성토를 들으며 고개 숙이는 시간이기도 했다. 개편 방향의 핵심은 콘텐츠 분절 판매. 권당 판매가 당연하던 시절이었고, 경영진은 분절 판매 모델 도입을 위해 읍소에 읍소를 거듭했다. 준비 기간 동안 회사의 ‘생존’을 위해 사진 인화 서비스 등‘부업’도 했다.
그 해 9월, <달빛 조각사> 등 굵직한 콘텐츠를 앞세워 분절 판매 모델을 핵심으로 한 카카오페이지 2.0이 나왔다. 일 거래액은 2천만 원까지 올랐지만 이내 하락했고, 상황을 타개하려고 열었던 이모티콘 증정 이벤트에는 구매 전환으로 이어지지 않는 ‘체리피커’들이 잔뜩 몰렸다.
손익분기점을 맞추려면 하루 거래액이 6천만 원 정도는 나와야 했다. 반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거래액에 재무 사정은 경색됐고, 웹툰과 웹소설을 제외한 영역의 인력들은 구조 조정에 내몰렸다. 국면을 전환할 수 있는 무언가를 내놓지 못한다면 회사는 공중분해될 상황이었다.
도약과 추락의 기로였던 2014년 10월 23일, 카카오페이지의 현재를 이끌어 낸 비즈니스 모델 ‘기다리면 무료(일명 ‘기다무’)’가 등장했다. ‘기다무’는 앞서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폭발력을 입증한 애니팡의 운영방식을 벤치마킹했다. 결제하지 않더라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게임 아이템인 ‘하트’를 채워주고, 기다리기 싫으면 하트를 구매하는 애니팡처럼 카카오페이지도 ‘시간’을 중심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재설계한 것.
절체절명의 회사는 완전히 다시 태어났다. 분절 판매 방식으로 운영할 때 3~4%를 오가던 구매 전환율은 25%까지 치솟았다. 한 달 뒤, 포도트리는 창업 4년 만에 처음으로 월간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했다.
거래액이 늘어나고 좋은 IP들을 많이 만나게 되면서 선순환 고리가 생겨났다. 카카오페이지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벌어들인 돈의 상당 부분을 크고 작은 CP사들에게 투자하고 있다. 플랫폼과 콘텐츠는 언제나 상호작용 한다는 판단 아래 나타나는 행보다.
2015년을 기점으로 포도트리는 탄탄한 스토리가 검증된 소설 기반의 웹툰인 ‘노블 코믹스’를 연이어 선보였다. ‘김비서가 왜 그럴까’, ‘닥터 최태수’, ‘황제의 외동딸’, ‘나 혼자만 레벨업’ 같은 작품들이 생생한 그림과 함께 다시 태어났다. 인기작들은 영화나 드라마 등 장르를 달리해 또 다른 생명력을 얻는다. ‘이태원 클라쓰’나 ‘강철비’, ‘미생’ 등 카카오페이지의 오리지널 IP들이 새롭게 태어났다.
포도트리는 2015년 말 카카오의 자회사로 편입됐고, 2018년 사명을 카카오페이지로 바꿨다. 이후 인도네시아 콘텐츠 기업 ‘네오바자르’ 인수(2018.12)했으며 북미 웹툰-웹소설 플랫폼 ‘타파스 미디어’를 통해 더 큰 ‘유니버스(Universe)’를 그려내기 위한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는 카카오 패밀리인 ‘픽코마’에 검증된 ‘K콘텐츠’(K웹툰, K스토리)를 독점 공급하며 만화 종주국의 디지털 전환에 기여하고 있다.
혹독한 시기를 겪은 뒤 만개한 것처럼 보이지만, 카카오페이지는 이제 갓 이야기의 첫 장을 써 내려간 것일지도 모른다.
“웹툰과 웹소설이 글로벌에서 자리 잡는다면? 헐리웃이 우리 이야기를 가져다 쓴다면? 이런 상상을 조금씩 현실로 바꿔가며 한국의 창작자들이 가져갈 수 있는 사업의 기회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모바일 안에 너무나 다양한 콘텐츠 선택지가 생겼어요. 이용자들의 한정된 시간을 누가 차지하느냐를 놓고 글로벌 플랫폼들과 경쟁하는 현실입니다. 카카오페이지에서는 학생, 회사원, 전업 작가 할 것 없이 무한한 상상력을 펼칠 수 있어요. 스토리 비즈니스 생태계를 꾸려내 세계로 나아가는 통로를 마련한 지금이 또 다른 시작점 아닐까요?” _ 제리
“재미없는 콘텐츠도 끝까지 읽어내는 끈기, 최대한 다양한 작가들의 인풋을 받아들이는 수용성이요. ‘덕업일치’라고 표현할 수 있겠지만, 좋아하는 것만 편식하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_ 카카오페이지 MD의 가장 중요한 역량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카카오페이지 1.0이 폭삭 망하지 않고, 조금 더 매출이 나왔더라면 반성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한번 독하게 깨졌기에 만화와 소설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Beginner’s Luck(초심자의 행운)이 없었던 것이 역설적으로 행운이 된 게 아닐까요. 실패를 회고하고 교훈을 얻어 나아가면 된다는 소중한 경험을 체득했죠” _ 숱한 어려움 중 가장 약이 됐던 경험에 관해
웹소설뿐만 아니라 블로그, 페이스북 포스팅, 포털 뉴스 등 뭐든 읽는 시간의 총량을 합하면 종전보다 줄었을까요? 인텐시브 리딩(Intensive Reading)만이 가치 있다고 보는 시각에서 ‘독서량이 적어서 걱정’이라는 비평이 나오는 건 아닐까요? 같은 내용이라도 UI/UX가 바뀌면 상호작용이 더 크게 일어날 수 있거든요. 세대 경험에 적합한 툴을 만들어 주는 것이 사업자들의 역할이죠”_ 과연 한국인의 독서량과 문해력이 문제일까라는 질문에 대해
“만화와 소설에 관해 한 부서에서 장벽 없이 이야기하는 거요. 예를 들어 ‘김비서가 왜 그럴까’가 소설로 인기 몰이를 했는데, 속도감 있게 웹툰으로 선보일 수 있었던 과정을 보면 그래요. 웹툰 담당자들이 제일 잘 만들 수 있는 스튜디오를 찾아주고, 소설 담당자가 원작자와의 협의를 실시간으로 진행했죠. 만화와 소설이 독립 조직이었다면 소통이 훨씬 어려웠을 거예요” _ 카카오페이지에서 인기 있는 원소스 멀티유즈(One Source Multi Use) 콘텐츠가 연이어 나오는 배경에 대해
“불법 유통 현황을 모니터링해보면 터키나 베트남 등지에서는 이미 음으로 양으로 카카오페이지의 콘텐츠를 보고 있는 것이 확인됩니다. 확장 가능성이죠. 북미에서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 세계적으로 안착하는데 속도가 붙을 것 같아요. 세계인들이 만화를 접하긴 하지만, 대체로 일본의 흑백판이거든요. 채색된 우리 웹툰은 시각적으로 충격적이죠.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일본 만화를 ‘발 번역’한 해적판이 우리나라의 블랙마켓에서 팔렸는데, 격세지감이죠” _ 카카오페이지의 세계화 행보에 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