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톡 외전
카카오톡이 최초의 모바일 메신저는 아니었다. 2010년 3월 카카오톡이 등장하기 전, 왓츠앱과 같은 유료 메신저가 이미 존재했다. 많은 사람들이 카카오톡의 폭발적인 성장과 성공의 요인으로 ‘무료’인 점을 꼽지만, 단체 채팅방을 열 수 있었던 최초의 모바일 메신저가 카카오톡이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PC환경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속도의 연결 효과는 ‘단톡방’에서 촉발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나 스마트폰 보급 초창기에 오래 사용한 전화번호를 010으로 교체한 사람이 적지 않았는데, 카카오톡의 친구 추천 기능과 단체 채팅방은 한국인의 소셜 네트워크를 유지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모바일 시대가 본격화되기 전, 수백만 명 수준의 이용자를 품은 PC 기반 서비스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카카오톡 탄생 전까지 약 3년 간, 아이위랩(카카오의 전신)은 PC 기반의 여러 서비스들을 출시했다. 이 서비스들은 이용자 수 3~4만 명을 확보하는데 그쳤다. 카카오톡 역시 지금처럼 ‘국민 앱’이 될 거라고 상상한 사람은 없었다. 크루들은 좀처럼 달성하기 어려웠던 10만 가입자를 기대했고, 단 5일 만에 이 수치를 넘어섰다. 출시 6개월 뒤 카카오톡은 100만 가입자를 모았다.
카카오톡의 이용자가 급증하던 2011년, 대대적인 서버 기술 혁신이 필요했다. 많은 후발주자들이 카카오톡의 경쟁자임을 자칭하던 때였다. ‘서버를 증설하고 이러이러한 기술적 변화가 일어난다’라며 시시콜콜 이야기하기보다, 이용자의 언어로 풀어낼 고민을 했던 카카오톡팀. (저마다 카톡 나와라, 비켜라, 게 섰거라 하면) ‘소는 누가 키우나’라는 의미를 담아 ‘겁나 빠른 황소 프로젝트’로 명명했다. 사람들은 빠른 스포츠카 람보르기니를 염두에 둔 작명일 것이라며 재미있어했다. 소문은 람보르기니 측에 닿았고, 오프라인 홍보행사에 자동차를 협찬받기에 이르렀다. ‘빠른 속도’라는 핵심 메시지가 이용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된 것은 두말할 나위 없었다. 덧. ‘겁나’라는 표현은 슈렉의 겁나 먼 왕국에서 차용했다.
2012년 3월 방한한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진행한 연설 도중 디지털 미디어를 통한 소통에 관해 이야기하며 “카카오톡”을 언급했다. 누적 가입자 수 4천2백만 명을 넘기던 카카오톡은 오바마 전 대통령의 육성을 알림음으로 제작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다. 국제변호사 자격증을 보유한 당시 CEO 비노(Vino)가 백악관 홈페이지를 낱낱이 뒤지고 관련 법령을 점검해 일주일 만에 새 알림음이 업데이트됐다. 이 알림음은 2019년 2월까지, 약 7년간 사용됐다.
2010년 12월 17일, 카카오톡 출시 후 처음으로 눈 다운 눈이 내렸다. 수도권 일대가 하얗게 변한 그 날, 3백만 카카오톡 이용자들이 일제히 눈 내린 풍경 사진을 전송했다. ‘작고 귀여운’ 서버는 안타깝게도 작동을 멈췄고, 항간에서는 중국발 해킹이 아니냐는 루머까지 돌았다. 서버팀이 사투를 벌인 끝에 두 시간 뒤 카카오톡은 정상 복구됐고, 그동안 크루들은 여러 언론사와 기관으로부터 걸려온 문의 전화에 진땀을 흘려야 했다. 지금이라면 채팅방에 눈 내리는 마을 풍경을 켤까 말까 노련한 고민을 하겠지만, 그 해 겨울 카카오는 무척 어렸다.
카카오톡 초창기의 음성 메시지 최대 분량은 1분이었다. 일부 이용자들은 ‘1분이 너무 짧다’는 의견을 보내왔고, 같은 리뷰가 여러 건 쌓이면서 적극적인 검토를 시작했다. ‘음성 분량을 늘린다면 최적의 길이는 얼마인가’를 놓고 토론을 거듭할 때, 한 이용자의 코멘트가 눈에 들어왔다. “최소한 노래 1절 정도는 보낼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음성 메시지 시간 늘리기에 개발적 제한이 없다고 확인한 카카오팀. 기왕 늘리기로 한 거 ‘노래 1절’이 아닌 한 곡을 담을 수 있게 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노래마다 연주 시간이 제각각이다 보니 어떤 노래를 기준으로 할지 정해야 했다. 고심 끝에 기준으로 삼은 노래 길이는 당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싸이의 ‘강남 스타일’. 3분, 5분 과 같이 ‘딱 떨어지는’ 시간이 아니다 보니 무슨 사연이 있나 궁금해 한 사람이 많았지만, 알고 보면 이런 단순한(?) 이야기가 숨어있었다. 덧. 지금의 카카오톡 음성 메시지 최대 전송 분량은 5분이며, 2014년 2월 카카오톡 4.3.1 안드로이드 버전부터 늘어났다.
카카오톡이 폭풍 성장할 때, 당시 국내 최고의 IT기업들이 연이어 모바일 메신저를 내놓았다. ‘게 섰거라 카카오톡’, ‘카카오톡 대항마 드디어 출격’과 같은 기사 헤드라인들이 넘치던 시절이었다. 일개 스타트업이 큰 적수를 만났다고 본 외부 시각과는 달리, 카카오톡 팀은 어느 정도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모 포털과의 계정 연동을 하지 않으면 로그인을 할 수 없었던 점이나, 카카오톡과 차별화하기 위해 너무 복잡해진 UI(User Interface)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많은 사람을 긴장하게 했던 두 서비스는 오래가지 못했다. 정작 많은 카카오 크루들에게 ‘진짜 긴장감’을 선사한 서비스는 T 모 서비스였다. 2011년 7월 출시된 이 서비스는 5개월 만에 1천만 다운로드를 기록했고, 빠른 속도가 돋보였다. 강적이 등장했음을 직감한 카카오톡팀은 긴장감을 놓지 않고 ‘겁나 빠른 황소 프로젝트’를 겁나 빠르게 추진해 대응했다. 번개 표시를 단 카카오톡에 사람들은 열광했고, 국민 메신저의 위상을 지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