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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카오 Dec 17. 2020

한번 더 ‘가보지 않은 길’에 놓이다

카카오-다음커뮤니케이션 합병 막전막후

2014년 5월 26일 오전, IT업계를 담당하는 기자들의 휴대전화가 일제히 진동했다. 


“[Web발신] [긴급] 오늘 오후 2시부터 서울 중구 소공로 플라자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카카오와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중요 발표가 진행됩니다. 사전 안내 자료를 제공할 수 없는 점 양해 부탁드리며, 취재를 희망하시는 기자님들께서는 시작 시간 전까지 입장을 완료해주십시오” 


최소 1~2주 전에 일정을 안내하거나, 언론사 내부에 내용을 보고할 수 있게끔 사전에 주제를 알려 주는 보통의 기업 기자 간담회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었다. 서울 시내 곳곳의 기자실이 술렁였다. 


‘카카오와 다음커뮤니케이션이 합병한다는 지난 만우절 우스갯소리가 현실이 되는 걸까?’ 


카카오와 다음의 합병 소식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빅 이벤트였다. 신흥 모바일 기업과 포털 1세대 기업의 결합 소식이 던진 충격파는 컸다. 143개 내외신 매체에서 219명의 기자가 합병 발표 현장을 찾았다. 당일과 이튿날에만 680건이 넘는 기사가 쏟아졌다. ‘철통 보안’ 속에 진행된 만큼 합병 논의에 관한 과정은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물리적 합병이 완료되고 만 6년을 넘어선 지금, 시간을 거꾸로 돌려 당시를 살펴본다.


2014년 5월 26일, 카카오와 다음의 합병 발표를 취해하기 위해 서울 소공동 플라자호텔 그랜드볼룸을 가득 메운 취재 기자들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

2012년과 2013년, 카카오는 성장 가능성을 현실로 증명했다. ‘국민 메신저’로 자리 잡은 카카오톡을 중심으로 선물하기와 플러스친구, 이모티콘, 카카오스토리, 게임하기와 카카오프렌즈 등 연이은 히트작들에 이용자들은 열광했다. 


주목할 만한 스타트업이었던 카카오는 단숨에 모바일 시대의 핵심 플레이어이자 한국 IT업계의 ‘빅 맨(Big man)’으로 자라났다. 카카오가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를 본격적으로 고민한 것도 이 무렵, 2013년 중반부터다. 


얼마 전까지 생존을 고민했었기에, 한편으로는 단시간에 한국 모바일 서비스 업계의 총아(寵兒)가 된 카카오였기에, 고민의 출발점에는 위기감이 기대감보다 훨씬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 패러다임 급변기에 언제 어떤 식으로 강력한 경쟁자가 출현할지, 짧은 시간에 수천만 이용자를 모은 여러 개 서비스들을 계속 감당하는 한편 새로운 화두를 던질 수 있을지 등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한남동의 생각’, 그리고 태핑(Tapping)

이 무렵, 카카오와 다음커뮤니케이션 사이에서 한차례 협업이 일어날 뻔했다. 윌리엄(William. 최세훈 전 다음커뮤니케이션 대표/전 카카오 공동대표)이 비노(Vino. 이석우 전 카카오 공동대표. 현 업비트 대표)에게 ‘다음의 검색 엔진을 카카오톡에 심어본다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를 건넸기 때문. 이 아이디어는 구체화되지 못했다. 연달아 히트한 신규 서비스들을 관리하면서 글로벌 사업 기회를 리서치하는 것만으로도 카카오의 리소스는 부족했다. 


한남동(구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서울 오피스 소재지)에서는 간혹 윌리엄과 이재웅 창업주간의 티타임이 진행됐다. 2014년 초에는 전년도 사업 성과를 놓고 두 사람 간의 대화가 오갔다. 


“'카카오와 새로운 무언가를 도모해본다면 어떨까?’라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뜻밖이었죠. 협업 차원을 넘어 합병을 고민해보자는 뉘앙스였거든요. 경영권을 내려놓은 이재웅 님이었지만 최대주주이자 창업주가 그런 이야기를 먼저 꺼냈기에 놀랐습니다. 협업을 구체적으로 진행할 수 없었을 만큼 바쁜 카카오였기에 ‘가능할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죠.” 윌리엄의 말이다. 


몇 주를 고민한 윌리엄은 판교로 향했고, 브라이언(Brian. 카카오 의장)과 찻잔을 앞에 두고 앉았다. “두 회사가 만약 합병을 한다면 어떨까요?”. 윌리엄의 이야기에 브라이언이 깜짝 놀랐다. 


각사가 가진 장점과 극복해야 될 숙제에 관해 대화가 오갔고, 브라이언은 “고민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스파크(Spark)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괜히 섣부르게 말을 꺼낸 건 아니었을까?’ 라며 윌리엄이 혼란스러워할 때쯤, 브라이언이 연락을 해 왔다.


“우리 한번 보시죠” 


햇살이 따뜻하던 4월 초, 두 리더는 서울 역삼동의 한 호텔 로비 카페에서 만났다. 브라이언은 “깊게 고민했는데, 윌리엄이 한 이야기가 다 맞는 말이더라”라며 운을 뗐다. 한국 1세대 인터넷 서비스 기업이자 포털(Portal) 사이트 역사의 원점인 다음커뮤니케이션과 가장 뜨거운 모바일 기업 카카오가 융합하기 위한 스파크가 튀었다. 


일주일 뒤인 4월 중순, 핵심 관계자들이 참석한 30분간의 미팅에서 양측은 합병을 본격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곧이어 태스크 포스(Task force)가 꾸려졌다. 카카오와 다음커뮤니케이션에서 각각 5명 정도의 IR, 전략, 법무 담당 임직원들이 차출됐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이 시점부터 투자은행이나 로펌, 전략 컨설팅펌 같은 곳이 함께 했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기업 M&A 경험을 가진 리더들이 TF안에서 크고 작은 이슈들을 직접 살폈다. 양 사는 가운데쯤 위치한 서울 대치동 한편에 TF를 위한 사무실을 별도로 꾸렸다. 자연스럽게 ‘철통 보안’을 위한 전제 조건들이 갖춰졌다.


#의견 차이

1995년 설립. 이메일 대중화 선도. 포털과 지도, 웹툰 등 카카오에는 없는 풍성한 콘텐츠들을 가진 기업. 그리고 숙련된 많은 개발자들을 보유한 회사. 하지만 모바일 시대로의 패러다임 전환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던 곳.  

다음커뮤니케이션은 카카오에게 없는 것을 굉장히 많이 가졌으면서도 카카오의 모바일 소셜 그래프를 가장 필요로 할 만한 곳이자 ‘욕심을 낼 만한’ 기업이었다.

 

협상 초중반에 양측이 가장 밀고 당겼던 부분은 밸류에이션(Valuation). 즉, 현재의 기업 가치를 판단해 적정 주가를 산정해 내는 작업이었다. 당시 다음커뮤니케이션은 상장사로서 주가에 따른 기업가치 평가가 가능했지만, 비상장사였던 카카오는 기업가치를 측정하는 다양한 평가 방법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카카오측이 처음 제안했던 딜(Deal)의 기준과 다음측이 산정한 밸류에이션에는 상당한 의견 차이가 있었다. TF는 두 달 남짓한 활동 기간 동안 치열한 논쟁과 회계법인의 합병비율 적정성 검토를 거쳐 합의점에 도달했다.


가장 큰 진통은 합병 발표를 목전에 두고 일어났다. 당초 양측은 2014년 5월 23일(금요일) 모든 내용을 공표하기로 계획했다. 하지만 다음 측 일부 지분에 대한 보호 예수 기간 설정 등 몇 가지 부분에서 이견이 남았다. 당시 합병 TF 구성원들은 “‘노 딜(No Deal)’까지 언급될 만큼 마침표를 찍는 것이 어려웠다”고 회고했다. 이사회는 23일 공시 가능 시간을 넘어 저녁까지 진행됐다. 양사 간 합병 발표 기자간담회임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법무법인 이름으로 계약해 둔 호텔 컨벤션홀 예약은 취소됐다. 


이 과정에서 한 경제지가 합병이 예상된다는 단독 기사를 토요일(5/24일) 자 신문에 실었다. 양사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들에게 전화가 빗발쳤다. 첫 기사에서 모호하게 표현된 합병 결정 여부와 주식 교환 비율 등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기자들의 연락이었다. 월요일(5/26일) 오전 공시 전까지 카카오와 다음커뮤니케이션 양측은 주말 동안 취재에 일체 반응할 수 없었다.


#매듭

상장사인 다음커뮤니케이션은 공시 규정을 지키기 위해 동이 트기 전 신고 서류 작업을 마쳤다. 오전 7시 20분을 기해 회사 합병 결정 공고가 게시됐다. 구체적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한 기자들의 전화가 다시 빗발쳤다. 

며칠 동안 ‘합병을 한다’에서 ‘무산될 것 같다’, 그리고 ’다시 하게 됐다’는 사실을 연이어 접한 양측 대외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들은 또 한 번 분주해졌다. 


큰 이벤트였던 만큼 넓은 장소가 필요했다. 다행히 서울 중심가 호텔의 대형 연회장을 섭외할 수 있었다. 당초 23일 발표를 위해 준비했던 행사 프로토콜과 각종 인쇄물 등에 새겨진 날짜와 시간을 다급히 수정했고, 수백 명의 언론인들을 상대로 긴급 공지 문자메시지가 발송됐다. 


5월 26일 오후 2시, 기자단과 양사 관계자들로 가득 찬 서울 소공동 플라자호텔 그랜드볼룸 단상에 카카오에서는 비노(Vino)가, 다음커뮤니케이션에서는 윌리엄(William)이 올랐다.


“카카오의 강력한 모바일 플랫폼 경쟁력과 다음이 보유한 우수한 콘텐츠 및 서비스-비즈니스 노하우가 결합하면 최상의 시너지 효과를 내게 될 것입니다. 기업 간 주식의 양수도가 없는 순수한 합병은 한국 기업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_ 윌리엄 


“통합법인은 모바일을 비롯해 IT 전 영역을 아우르는 커뮤니케이션-정보-생활 플랫폼 사업자로 성장해 나갈 것입니다. 머지않아 모바일 메신저 플랫폼이 증명했던 모바일 커뮤니케이션 혁명은 정보-생활 혁명으로 확대될 것입니다. 다음-카카오가 아무도가보지 않은 길을 만들어 가겠습니다. IT 모바일 역사를 새로 쓰겠습니다.” _ 비노


#또 다른 시작

공개 시장에서 거래되던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주가는 7만 원 초반대. 비상장사인 카카오의 주식 가치는 주당 11만 원 초반대로 평가됐다. (증권신고서 기준) 시가총액은 다음이 1조 원 안팎, 카카오는 3조 1천억 원대였다. 당시 4조원 대의 합병 법인은 성장을 거듭해 시가총액 32조 원 대(2020년 11월 30일 기준) KOSPI 10위권 기업이 됐다. 


“합병 논의, 그 이후 물리적 합병을 준비하는 과정, 그리고 두 회사를 화학적으로 결합시키는 시간들. 2년가량은 육체적으로 한계를 느낄 만큼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그 상황을 마주한다면 합병을 진행할 것 같아요. 카카오와 합병을 추진하기 전에도, 매년 한 두 곳의 기업으로부터 진지한 인수 제안을 받았었지만 모두 거절했어요. 모든 주주에게 이익이 되는 딜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카카오와의 결합은 양측이 낼 수 있는 시너지가 막강했기에 진행할 수 있었고, 그때 구상했던 것들을 상당 부분 실현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_ 윌리엄 


“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사람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세상을 연결하려고 합니다. 연결을 통해 정보가 흐르고 비즈니스가 일어나고 마음이 이어집니다. 연결의 혁신으로 세상은 더욱 가깝고 새로워질 것으로 믿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일상생활 전반에 서비스의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려고 합니다. 그 길은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일 겁니다. 우리는 지도 없이 항해하는 배와 같습니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건 주변의 동료밖에 없습니다. 누군가는 별을 보면서, 누군가는 수평선을 관측하면서 나아가야 할 길을 찾아야 하고 누군가는 24시간 엔진을 돌려야 합니다. 누군가는 밥을 지어야 하겠지요. 이 모두가 하나입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가시지 않겠습니까?” _ 브라이언 (2014년 10월 1일 합병법인 공식 출범 후 사내 업무 툴 아지트(Agit)에 게시한 글에서 발췌)


2014년 9월 30일, 다음과의 물리적 합병이 진행되기 전날 카카오 의장 브라이언과 CEO 제이비가 크루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_ 사진제공 glen.kim


1990년대에 시작된 한국 인터넷 역사의 알파(α)와 2010년대를 상징하는 오메가(Ω)는 ‘카카오’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더 큰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2014년 10월 1일 합병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상영한 영상. 당시 상상만 하던 여러 서비스들이 현실화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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