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 보라색
“혹시, ‘아미’세요?” 며칠 전에도 또 같은 질문을 들었다. BTS 팬은 아니지만 그들 덕분에 보라색이 유행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고마움을 느낀다. 보라색은 쉽게 접근하기 힘든, 약간은 무겁고 우울한 이미지가 있었는데, 요새는 많이들 보라색을 선호하는 걸 보면 이미지 변신이 되었나 보다. 심지어 자동차도, 휴대폰도 보라색이 나올 정도니. 다시금 방탄소년들이여, 고맙다.
보라색을 좋아한 건 최근의 일이 아니다. 그저 유행 따라 보라색을 좋아하게 된 것이 아니라 꽤 역사가 깊다. 10대 초반부터 보라색을 좋아했던 아이였는데, 아껴 쓴다고 조금씩 썼는데도 유난히 보라색 크레파스나 색연필이 먼저 동이 났다. 물감을 사용할 때는 빨간색과 파란색을 조합해 보라색을 만들어 쓰기도 했다. 짙은 색부터 옅은 색까지 다양한 보라색들을 만들었다. 모든 보라색은 나로부터 나온 것만 같았다.
다만, 보라색 물건들이 급속도로 늘어난 최근 10여년 동안 내게도 다양한 보라색 아이템들이 생겼다.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보라색이었던 날도 여럿 있었다. 이렇게 무엇이든 보라색 물건을 하나씩 가지고 다니다 보니 이제는 주변 사람들에게서 ‘보라색만 보면 내가 생각난다’는 말을 제법 듣는다. 아주 작은 관심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색을 보면서 자연스레 나를 떠올려 준다니. 이것 또한 무척 고마운 일이다.
언젠가 나의 다이빙 강사님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미란 씨, 진짜 보라색 아이덴티티가 확실하네요!” 듣고 있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보라색이 나의 강한 자아가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보라팡인’은 앞으로도 ‘보라보라’ 하게 삶을 채워보려 한다. 보라색 크레파스가 사라지는 것을 슬퍼하던 꼬맹이는 백발을 보라색으로 염색한 힙한 할머니가 될 것이다. 나의 장례식의 컨셉도 이미 보라색으로 정해둔 지 오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