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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ucingRan Sep 24. 2022

결국 나를 정의하는 것은 이름이 아닐까

002. 내 이름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많이 쓰고 내뱉은 단어는 분명 내 이름 세 글자일 것이다. 가장 익숙하고 들리면 귀를 쫑긋 세워 신경을 쓰게 되는 단어. 명사라고 하는 게 맞겠지만 하나의 고유한, 자립적인 느낌이 있어서 그렇게 지칭했다. 결국 나를 나로 정의하는 것은 내 이름이 아닐까. 부모가 명명한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좋지 않거나 하면 개명을 하기도 하지만, 나는 부친이 직접 지었다는 내 이름을 참 좋아한다.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다면 좀 더 아쉬워했을까.


‘미란’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이는 거의 대부분 ‘아름다울 미’에 ‘난초 란’ 한자를 쓴다. 어린아이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이름으로 놀림을 받았는데, ‘알 란’을 써서 계란이냐는 소리도 들었다. 그 때문인지 열심히 한자를 찾아보았던 적이 있었는데, ‘빛날 란’으로 한자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름답고 빛나다. 좋은 것들만 갖다 붙여 삶을 채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 생각은 생각으로만 그쳤다. 이름 자체를 바꾸든 한자를 바꾸든 꽤 귀찮은 과정을 거쳐야 하고, 위에 언급했지만 나는 내 이름을 좋아하니까 굳이 바꿀 필요가 있나 생각하며 지금껏 살아온 것이다.


물론, 나의 성 Family name은 부친으로부터 왔다. ‘도’라는 성이 흔한 성씨는 아니기도 하고, ‘도’라고 발음해도 ‘고’나 ‘보’로 들리는 경우가 많아 다시 말하면서 정정하는 경험이 많았다. 예를 들 때 ‘경기도’ 할 때의 ‘도’라고 설명을 했는데, 실제 나의 한자도 지명을 이르는 ‘도’와 동일하여 뜻이 같다. ‘섬’을 뜻하는 ‘도’였다면 ‘제주도’ 할 때의 ‘도’라고 설명하지 않았을까. 섬이라는 뜻도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여러 번 해봤다. ‘미란’이라는 이름의, 섬.


여담이지만, 모친의 성은 ‘양’이다. 요즘은 부모의 성 모두 붙인 이름을 자주 접한다. 부모의 성을 모두 붙였다면, 내 이름은 ‘도양미란’ 혹은 ‘양도미란’이 되었을 테다. 재밌다. 둘 다 놀림거리가 가득한 이름이 되겠지만, 이름에 모친의 성이 없다는 건 아쉽다. 또 한편으로는 생물학적으로 모계의 유전자를 타고 간다는데, 이름은 부계로부터, 유전자는 모계로부터 왔다고 생각하면 조금의 위안이 된다.


영문으로는 ‘ㄹ’은 ‘R’을 쓴다. 그로 인해 외국인 친구들은 나를 부를 때 ‘미롼’이라고 발음한다. 10대 때 캐나다 원어민 선생님으로부터 지어진 ‘크리스틴 Christine’이라는 영문 이름이 있는데, 실제 외국을 나갈 때는 내 이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일단 낯설고 어색하고 내 것이 아닌 느낌이 들고, 나와 어울리는 이미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그나마 어려운 발음이 없는 이름이라 다행이다. 외국에서 ‘리 Lee’나 ‘킴 Kim’ 같은 성으로 불리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나의 닉네임은 주로 ‘란’이 들어간다. 부친이 경상도 태생이라 뒷 글자로 부르는 경우를 많이 접해서인지 이름 뒷 글자로 부르거나 불리는 걸 좋아한다. ‘란아-’ 하고 부르는 어감이 참 듣기 좋다. 거기다 ‘ㅇ’이 없는 이름이다 보니 이어서 오는 조사 ‘아’나 ‘야’에서 오는 둥근 어감도 좋아하는 것 같다. ‘ㅇ’이 없는 이름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ㅇ’이 없어서 그런가, 직선의 이름을 가진 나는 좀 더 뻣뻣한 편이기도 하다. 물론, 신빙성은 전혀 없다.


어쨌든, 결론은 타의에 의해 강제성으로 이름을 갖게 되었지만, 자의에 의해 내 이름을 좋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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