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ucingRan Sep 25. 2022

언젠가 직접 고래를 만나고 싶어

003. 고래



요즘 한 ‘이상한 변호사’ 덕에 고래 열풍이 불고 있다. 누군가 내 팔의 타투를 보면 그 드라마를 언급할 정도여서 인기를 실감했다. 덕분에 여기저기 고래 사진이나 그림이 넘쳐나고 있어서 고래 ‘덕후’는 눈이 바쁘다. 내 주변 친하고 가까운 이들은 고맙게도 나를 떠올려 주며 드라마를 한 번씩 언급한다. 짝꿍도 초반에는 내게 ‘고래 다큐인지 모를 정도로 고래가 계속 나온다’고 추천을 하기도 했다. 나는 그 드라마가 종영하고 나서야 차근히 보았다. 왜 주위에서 그런 말들을 했는지, 왜 고래가 유행했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처음 고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던 건 10대 초반쯤이었다. 중학생이 되기 전으로 기억한다. TV에서 해양 다큐멘터리를 봤던 것 같은데, 그때 보았던 고래의 모습에 압도당했다. 그 순간에는 숨을 쉴 수 없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저 고래는 어디에 살까? 어떻게 찍혔을까? 누가 찍었을까? 궁금했고 이내 그 사람이 부러웠다. 지구 어딘가 어느 바닷속에서 누군가는 고래를 실물로 만난다. 그렇다면 나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한 건 찰나의 순간이었고, 그 생각은 금세 잊혔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불현듯 떠올랐다. 맞아. 나 이런 생각 했었지? 하고. 스물다섯 쯤이었다.


그 이후에는 이따금씩 고래 영상을 찾아봤다. 내가 어릴 때 화면으로 봤던 고래는 ‘혹등고래’였고, 무척 똑똑하고 평화로운 존재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혹등고래의 노랫소리를 처음 들었다. 눈물이 났다. 신기했고 아름다웠고 신비로웠다. 어떤 때는 우웅- 하면서 첼로 소리가 들렸고, 어떤 때는 관악기 같았다. ‘울음’이 아니라 ‘노래’로 표현하는 이유다. 하나의 연주 같고, 어떤 때는 노래 같았다. 불면증을 심하게 앓았던 때 밤마다 자주 들었다. 나만 이렇게 느끼는 게 아니라는 걸 조금 더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지만.


서른 이후에는 ‘고래 만나기’를 꿈꾸기 시작했다. ‘고래를 직접 만나는 것’은 하나의 인생 목표가 되었다. 물 공포와 트라우마를 인지하고 나서는 물과 친해지려고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스쿠버 다이빙을 시작했다. 나름대로 차근차근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 거대하고 아름다운 생물을 직접 만나게 되면 어떨까? 신비로운 그 노랫소리를 직접 듣게 되면 어떨까? 모르겠다. 사실 정말 만날 수 있을지 조차 모를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하나의 꿈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결국 나를 정의하는 것은 이름이 아닐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