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탐구생활 - 오늘의'좋아요'
015. 자기 전 빠져드는 어떤 세계
나는 책을 참 좋아하는 아이였다. 아빠가 눈 나빠진다고 책 좀 그만 읽으라고 할 정도로, 책을 빼앗기면서도 이불 안에 스탠드 조명을 켜고 읽을 정도로 좋아하고 즐겨 읽었다. 어쩌면 나는 10대 때 읽었던 책들을 밑천 삼아 20대, 30대를 보낸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책을 많이 읽었다. 그때는 책만이 유일한 도피처이자 안식처 같은 곳이었다. 어디서든 펼치기만 하면 다양한 이야기들이 내 머릿속으로 걸어 들어왔다. 한 권의 책을, 한 편의 이야기를 모두 읽고 난 후에 자기 전 그 내용을 곱씹으며 꿈에서도 만나면 좋겠다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올해는 많이 말고 적당히, 오랫동안 유지하는 의미에서 한 주 한 권으로 정했다. 자기 전 내키는 대로 읽고, 12시 전 빨리 잠드는 것을 목표로 읽기 시작했다. 책마다 조금의 시간 차는 있지만 아직까지 잘 지켜지고 있다. 경쾌한 에세이 몇 권과 다소 무거운 소설, 가볍지만 술술 읽히지는 않던 두꺼운 역사책을 지나 이번 주는 최경자 시인의 수필을 읽는다. 얇은 책인데 도무지 빠르게 책장을 넘길 수가 없다. 날카로운 화살촉이 꽂힌 것처럼 아프기도 하고, 먹먹한 마음에 한참을 앉아 있기도 했다. 문장 하나하나에 연연하는 책은 또 오랜만이라서 이 여운을 즐기면서 읽고 있다. 그렇다. 밤마다 스스로를 게으른 시인이라고 칭하는 그녀의 세계에 빠져 그렇게 철학과 시인의 삶을 간접 체험해 본다. 그만 쓰자고 말하면서 누구보다 가장 처절하고 치열하게 쓰던 사람의 세계는 단단하면서 아름답다.
저번 주에는 미신과 목욕으로 시작했고, 남녀차별의 시대와 여성이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입고 수영을 했다는 그런 시대를 지나 지금의 수영이 자리 잡은 수영 세계사 이야기를 읽었고, 수영장 한가운데 둥둥 떠있는 상상을 하고는 했다. 비록 몸은 침대 위에 누워 있을 지라도. 그나저나 지금도 딱히 대단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때 태어나지 않길 잘했지 뭐야. 수영의 유희를 하마터면 모르고 살 뻔했다. 이토록 늦은 것도 땅을 치며 후회할 일인데, 아예 모르고 사는 삶은 사양이야, 하며 혼자 또 안도하기도 했다. 자기 전 빠져드는 세계는 무엇보다 더 자유롭고, 가장 솔직하고, 거기다 무척 재밌다. 그리고 언제나 상상은 자유다. 상상대로 펼쳐지는 꿈을 꾸기 전, 자유로운 상상을 하면서 보내는 평화로운 이 시간을 절대 포기할 수가 없다. 다음은 뭘 읽을까 고민하는 것도 즐겁다. 이불을 뒤집어쓰며 읽던 꼬꼬마 때의 흥분이 아직 남아있어 정말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