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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도 Oct 0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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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우리집황금이/편지


하비

결혼하고 임신을 하게 되고 새벽같이 일어나 회사를 출근하고 업무에 시달리다 퇴근한 버스 안. 부른 배를 안고 올라선 앉을 자리 없는 빡빡한 퇴근길. 임신 전에 없던 감정들에 쌓여 괜스레 서운하고 서러운 하루. 오늘은 야근이라는 당연한듯한 남편의 문자가 오고 힘겹게 버스에서 내려 가파른 골목길을 걸어 마주한 집. 울적한 마음에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결혼 전부터 키우던 강아지 하비가 반갑게 꼬리를 흔든다. 집에 들어가 털썩 앉아 무릎에 기댄 하비를 꼭 안으며 눈물을 쏟는다. 마음을 안다는 듯 위로하듯 가만히 지켜보는 하비. 너도 종일 외로웠을 텐데... 고마워, 하비.



우리집 황금이

회사에서 퇴근하고 집으로 가는 길... 마무리 못한 업무가 신경 쓰인다. 

내일 회사에 일찍 출근하지 모. 오늘은 아내가 끓여준 뜨끈한 김치찌개에 밥을 먹고 싶다. 

아내에게 전화한다.

"나 퇴근해. 오늘 김치찌개가 먹고 싶은데 끓여 줄 수 있어?"

"아... 오늘 좀 피곤해서 이미 치킨 시켰는데? 다음에 끓여 줄게."


집에 도착하니 아이들은 아빠가 온 걸 아는지 모르는지 유튜브만 보고 있다. 아내는 흘끗 보고 '왔어?' 한다.

"얘들아. 아빠 왔는데 보지도 않냐?" 딸이 달려온다.

"아빠~. 아빠 나 이번 주말에 키즈카페 가고 싶어. 그때 갔던데 말이야. 진짜 재밌어서~ 응? 응?"

"보자마자 이러기야?ㅎㅎ 생각해 보자, 딸. 아들! 아들은 아빠 쳐다도 안보냐? 하, 녀석."

"오셨어요.." 눈은 화면을 보며 아들이 대답한다.


얼마 전 키우기 시작한 물고기 황금이가 물밑에서 왔다 갔다 한다. 딸이 키우고 싶다고 졸라대서 아내가 9마리를 샀다는 데 며칠 만에 다 죽고 황금이만 살아남았다. 어항으로 다가가 '황금아' 하고 부른다. 물밑에 있던 황금이는 어항 벽에 가까이 붙어 지느러미를 사정없이 흔든다. 

"황금아. 잘 있었어? 우리 황금이, 반가워 해줘서 고맙다." 

가만히 황금이와 눈을 마주하며  앉는다. "휴우~"


띵동

"와~ 치킨이다!" 아이들이 문을 향해 뛴다.






편지

남편은 3년째 지방에서 근무 중이다. 시간이 지나면 독박 육아가 익숙해 질 거라 생각했는데 3년이 되니 괜스레 울적하고 모든 것이 힘에 부친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번을 아이들 혼자 돌보느라 고생한다, 수고한다 말 한마디를 안 하는 무뚝뚝이 남편이다.


'아... 오늘 좀 지치네.' 유치원에서 딸아이 하원을 시키고 집에 들어와 소파에 털썩 앉았다. 딸은 주황색 유치원 가방에서 뭔가를 찾는지 물건들을 쏟아붓는다. "뭘 찾는데 가방을 쏟아붓니, 귤아... 하휴~" 

귤이 눈치를 보며 네모반듯하게 접은 종이 하나를 건넨다. "뭔데?"


종이를 펼쳤다.

'소중해 예뻐 사랑해' 

눈물이 울컥 난다. "고마워..." 아이를 꼭 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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