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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지킴이 Nov 20. 2017

서른이라는 나잇값에 대하여

인생에 대한 책임감을 배우는 시기


'서른'이라는 나이는 유독 '씁쓸함'이라는 단어와 많이 연결된다. 

수 많은 드라마 속에서, 그 유명한 <서른즈음에>라는 노래에서

그리고 <심리학이 서른살에게 묻다>와 같은 서른살을 소재로 하는 책 속에서도

서른살들은, 그리고 삼십대들은 하나 같이 제 2의 사춘기를 겪는 듯 보인다. 


이십대 중반까지만 해도 나는

사람들이 '서른'이라는 나이를 무서워하는 이유가

단지 이십대의 풋풋함, 그리고 젊음 정도만을 잃어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서른이라는 나이가 별로 무섭지 않았다.

서른이 되면 젊음이야 조금 잃을 수는 있겠지만

공부를 계속하는 이상 나는 조금 더 똑똑해 질 수 있고, 

계속해서 일하는 만큼 내 재산도 조금씩은 늘어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른이라는 나이가 주는 무게감을 모른채, 어느덧 나에게 서른이 찾아왔다. 



올해 초, 서른이라는 나이를 처음 맞이하고 났을 때 나의 반응은

'서른 뭐, 그까이거 별 거 없네. 그냥 나이 앞자리가 바뀌는 것 뿐인데 다들 왜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대'

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서른 살을 맞이한 지 11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서른'이라는 나이에 대해

제 2의 사춘기를 겪는다는 표현을 썼는지 어렴풋이 느껴나가고 있다.


돌이켜 보면 이십대 때의 나는, 나 하나만 생각했다.

하고 싶은 공부만 골라서 했고, 하고 싶은 일만 하겠다고 버텼다.

가정형편이 넉넉지 않아 대학교 입학해서부터 스물 아홉살까지,

일하지 않고 놀았던 날들이 거의 없었지만 그마저도 나 혼자 쓸 돈만 벌면 됐기에 그리 큰 부담은 없었다.


그러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나, 앞이 보이지 않아 컴컴하다고 느꼈을 때는

내 옆에 든든하게 살아계신 부모님께, 인생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 인생 선배에게

'아무것도 몰라요'라는 순진한 얼굴로 기댈 수 있었다.


그렇게 이십대의 젊음은 나에게, '기댐'이라는 달콤함을 선물로 주었다. 



그런데 서른 살이 된 이후 더 이상 내게는 '기댐'이라는 선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기댐'이라는 선물의 댓가로 '책임감'이라는 서른의 나잇값을 요구하고 있다. 


서른 살이 된 이후 내가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이제 나는 누군가를 책임져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예전에 커다란 나무처럼 보였던 부모님은,

세월을 겪으며 내게 기대 쉬어야 하는 고목이 되어가고 있다.

아직 새로운 가정을 이루지는 않았지만, 

지금 내 곁을 지켜주는 사랑하는 그 사람과 인생을 함께 하겠다고 결정하면,

이제는 내 인생 뿐 아니라 그 사람의 인생,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내 2세도 책임져야 한다.


사회적인 책임감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이제 신입사원이 아닌 나는 더이상 '잘 모른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기댈 수 없다.

3년 7개월의 경력자로서 다시 한번 사회의 문을 두드려야 하는 나는

그 어떤 일에도 잘 책임질 수 있는 사람으로 무장하여 다른 회사를 두드려야 한다.


그래서 처음에 나는 이 책임감의 무게가 느껴지자 마자 어딘가로 도망가고 싶었다. 



그렇게 책임감을 등에 업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헤매고 있다고 생각할 때

나보다 먼저 세상을 살았던 인생 선배들이 남긴 책 속에서,

나보다 먼저 이 책임감을 견뎌낸 지인들의 말 속에서

무섭지만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가봐야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물론 아직 서른 살 11개월차인 나는, 지금까지 걸어왔던 날보다 걸어갈 날이 더 많기에

앞으로 걸어 나가는 길이 조금은 더 암담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지금까지 만났던 풍파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더 쎈 풍파를 만나게 될 수도 있고

지금까지 길을 잃고 헤맸던 것 보다 더 복잡한 미로가 내 앞에 놓여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책임감'을 직시하고,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의 결정을 내린 이상

나는 이 책임감의 무게를 더 이상 무서워만 하거나 피하지 않고

담담하게 업고 걸어나가 볼 생각이다.


내가 무척이나 원해서 태어난 건지, 아니면 어쩌다 보니 이 세상에 태어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내 인생의 책임감을 함께 나누어주었던 사람들을 위해,

지금까지 내 인생을 함께 지탱해줬던 사람들을 위해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느끼며 서른이라는 무게를 버텨 보려 한다.


물론, 이제 1개월 10일 후면 서른 한 살이 되는 내가

서른의 책임감은 아무것도 아니었으며, 서른 한 살이 제일 힘든 나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때는 또 그 때 나름대로. 내게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생기리라 그리 믿는다.


서른, 참으로 쌉싸름하고 달콤한 나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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