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 환상과 현실(5)

- 이상은 높고 현실은 냉정하다.

by 농도C

준성이 대팔에게 다시 말했다.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블랙리스트라고 공식화된 것은 없지만 이번 일은 백화점에서도 큰 일이니까 점장님께도 보고하고 재발 방지를 해야된다는거지. 그 동안 박상철 고객이 선을 넘은 적은 없었잖아. 이번처럼 미쳐 날뛸 줄은 나도 몰랐지."

"네 맞습니다. 저도 이번에 박상철 고객이 이렇게 흥분을 하면서 멱살까지 잡은건 처음이긴 합니다. 그런데요 팀장님. 이 내용 보고를 한다고 해서 블랙리스트네 뭐네 입장 금지네 이런 내용이 만들어 지실거라고 생각하세요?"

대팔은 자리에서 앉아서 듣다가 일어서서 준성 앞으로 움직였다.

"윗분들께서 이 이야기 들으신다고 해서 블랙리스트를 만드시는 일이 있을까요? 만들었으면 벌써 만들었을 것 같기는 합니다. 어떻게든 VIP를 더 잘 케어해라, 타 점포에 뺏기면 안된다, 매출 잘 내주시는 분들이다 적당히 맞춰주자, 이게 기본 매뉴얼 아닌가요?"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서 하는거지! 박상철 고객이 뭐라고 네가 멱살까지 잡히고 그래!"

준성은 말을 더 하려다가 할 말을 잃은듯 "끄응.." 소리를 내며 자리에 앉아 한숨을 쉬었다.


그러다가 전화를 받고는 다시 자켓을 걸쳤다.

"점장님실 올라갔다 올게."

그렇게 준성이 올라간 다음, 시안이 온갖 근심을 가진 얼굴로 대팔에게 물었다.

"과장님, 그런 고객들 정말 어떻게 하면 안되요? 아니, 저도 매번 컴플레인을 처리하다 보면 매장에서 안된다 어렵다 하는 일들을 계속 백화점을 통하면 되는 줄 아시는 분들이 많아서 힘들어요. 저희가 사실 브랜드한테 설득해서 겨우겨우 해드리는 부분도 있고 그렇잖아요."

대팔도 자리에 앉아서 크게 한숨을 쉬다가 잠깐 하늘도 보면서 생각도 좀 했다가 말했다.

"그게 바로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이야. 백화점이 뭐 되는 곳인 것 같지만, 우리도 결국 감정노동하면서 그렇게 컴플레인 거시는 분들 케어해드리고, 컴플레인에 상처받은 브랜드 직원들 케어하는 일도 우리의 업이라면 업이야. 물론, 우리는 누가 케어해줘요? 라고 물어보면 나도 뭐라 말을 못하겠다."

대팔도 말을 하고서도 씁쓸한듯 낯빛이 어두워보였다. 그렇게 매장에서 한바탕을 하고도 다시 사무실에 올라와서는 밀린 일을 해야했다. 그것이 그들의 업이라면 업이었다.


그날 저녁, 준성은 대팔과 이자카야의 바 자리에 앉아있었다.

이자카야 사장님이 구워주시는 꼬치 요리를 기다리며, 각자 소주에 잔을 채우고, 짠을 하고, 각자 잔을 비우기를 몇 차례였다. 준성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점장님이 너 고생했다신다."

대팔은 예상했다는 듯 피식 웃었다. "그게 다죠?"

준성이 소주를 한 잔 비우고서는 말했다. "응. 그 외에 별다른 말씀 없으셨어."

"거 봐요. 왜 애들한테 블랙리스트네 뭐네 뭐 그런 이야기를 해서는 괜히 애들만 심란하게 만들고 그래요. 우리 일 중에 원래 컴플레인 고객을 상대하는 일도 있고, 그러다가 자기랑 안맞아서 퇴사하는 사람도 있고, 팀장님이랑 저 같이 버티는 사람도 있고 그런거지 뭐."

"모르겠다 대팔아."

준성이 다시금 소주를 채운 다음 한 잔을 털어넣었다.


"네가 올해 13년, 나는 올해 25년. 회사가 그 동안 바뀌었다 바뀌었다 하는데, 물론 좋게 바뀐 것도 있고 한데 고객에 대한 부분은 여전한 것 같다. 안바뀌어 이게. 백화점이 아무래도 서비스가 기반인 곳이고 워낙 사람이 다양하다보니까 A 고객에게 했을 때는 통했던 방법이 B한테는 또 안통해. 그러니까 나는 또 몰매를 맞아. 막 고객은 자기를 무시했녜 어쩌네 저쩌네 하면서 융단폭격을 퍼부어. 이러기를 25년이니까 어느순간 그 순간을 피하게 되는거지. 맞아. 이번 박상철 건들 너 휴가갔을 때 내가 처리할 수 있었지. 근데 피했어. 나도 이제 그런 순간들을 무의식적으로 마주하고 싶지 않은거지. 반평생을 이쪽 일을 하면서 그런 순간들을 수천번은 겪었을텐데도 말이야."

오랜만에 느끼는 준성의 속이야기에 대팔은 의외라는 듯 준성을 바라본다. 준성은 계속 말을 이어간다.

"올해 네가 여러모로 고생도 많고, 이래저래 다양한 사람들 상대하느라 고생이 많아서 네가 어떤 생각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래도 버텨보자 대팔아. 이게 정답인지는 모르겠는데, 난 그래도 여기서 좀 더해볼란다. 해보다 보면 또 길이 나오겠지. 나는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하는 능력은 없어서, 좀 더 버텨보면서 조금씩 바꿔볼란다."

"에이, 뭘 또 그런 식으로 말을 하고 그래요. 오늘따라 갑자기 사람이 감성적이 되셨어."

대팔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준성에게 소주를 따르면서 쿨한 척 이야기했다. 물론 그의 속까지 쿨한 것은 아니었지만.


며칠이 지나고 경찰 측에 이 부분에 대해 형사 고소를 진행할 것인지를 물었을 때, 대팔은 하루만 시간을 달라고 하고, 상철에게 전화를 했다.

"선생님. 카페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잠시 뵐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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