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리 되었지만, 정리되지 않았다.
대팔은 늘 박상철을 만나던 카페에 다시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이 마시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올려놓은 채, 오늘도 무심하게 창밖을 바라보면서 대팔은 상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상철을 만나서 크게 해야할 말은 없었다. 에르누아는 그 사이에 본사 CS 팀장이라는 사람이 박상철에게 연락을 해서 각서 같은 것을 들이밀고는 박상철이 원하는 상품을 구해주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명품 브랜드의 일처리 방식이 다 그런가 싶다가도 어쨌든 문서를 남겨서 추후에 법적인 책임을 물 수도 있다는 식으로 남겨놓는게 참 그들답다 싶었다.
로플로라 화장품도 정리를 했다. 로플로라 본사 담당자가 상철을 만나서 적절한 선에서 해결을 봤다고 했다. 물론 그 적절한 선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굳이 알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번 매장에서 경찰이 상철을 데려가고, 그 이후에 에르누아와 로플로라에서 연락이 왔다. 모두 컴플레인을 정리했으니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이상 대팔도 더 이상 알고 싶지 않았다.
"오늘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다놨군. 고맙네."
다시 활기를 찾은 듯한 모습의 상철이 대팔 앞에 앉으면서 말했다.
"에르누아와 로플로라 본사에서는 자네에게 연락을 하던가?"
"네. 연락 받았습니다. 적절한 선에서 마무리를 지으셨다고.."
"그렇게 했네. 더 이상 자네와 엮이면 안될 것 같아서 서둘러 마무리를 했네."
그렇게 이야기를 한 후 잠시동안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서로 간에 할 말이 있는 듯 보였지만, 타이밍을 보는 것인지 말을 떼려다가 마는 듯한 모습이 한 두 번 정도 나왔다. 그러다가 상철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이제 자네를 보는 일이 오늘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네."
대팔은 상철의 말에 잠시 놀란 듯 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와이프가 세상을 떠난지도 어느덧 시간이 흘렀고, 나는 원래 해외에서 사업을 하던 사람일세. 생각을 좀 해보았는데 언제까지 이렇게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사업을 하려고 하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나를 만나려고 한 다른 이유가 여기 테이블에 있는 서류 봉투를 주려고 한 것은 아니었나?"
상철이 손짓한 곳에는 봉투가 있었다. 그 안에 어떤 서류들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닙니다 선생님. 브랜드의 컴플레인 건들이 다 처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확인차 뵙자고 한 거였습니다. 언제 출국하시나요?"
"그렇군. 다음주에 떠날 예정이네."
"흠.. 알겠습니다. 마저 정리 잘 하시고 조심히 떠나십시오. 그럼 저는 다음 미팅이 있어서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대팔은 상철과 인사를 하고는 카페를 나왔다. 사실 대팔이 준비한 서류도 일종의 합의서였다. 경찰에 형사고소를 한들 처벌의 강도가 크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대팔은 형사고소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상철이 백화점에서 근거없는 컴플레인으로 매장에 손해를 끼치지 않겠다는 일종의 약속을 할 셈이었다. 하지만 상철이 해외를 간다고 하니 그 서류가 쓸모가 없어진 셈이었다.
"휴우, 결국은 이렇게 또 한 페이지가 덮이는건가. 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
대팔은 하늘을 잠시 바라보다가 백화점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대팔의 앞에는 일이 많았고, 대팔은 퇴사에 대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나를 지치게 만든 곳, 나의 이상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린 곳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이 또 떠난다고 하니 또 다시 안주할까 고민하는 대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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