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숏, 롱테이크 너머의 <비정성시>

by andrei

영화 교과서에는 롱숏과 롱테이크에 대한 정의와 예시가 다양하게 나온다. 멀리서 찍기, 전체가 화면 안에 들어오게 찍기, 길게 찍기, 오래 찍기, 긴 호흡으로 찍기 등등. 이런 설명들은 아주 틀린 것도 아니다. 그리고 눈과 시야, 그리고 특정 관점에 찍혀 있는 위치에 대한 감각을 이미 본연적으로 알고 있는 인간은 카메라의 운동법에 대한 이해를 즉각적으로 해낸다. 실제 영화 예시를 통해서도 손쉽게 아 이런 게 롱숏이구나, 롱테이크구나 이해한다.


나 역시도 롱숏이라든지 롱테이크는 영화 교과서와 영화 예시를 통해 배웠다. 그리고 이런 표현법에는 누구누구가 거장이다,라는 정보도 몇 가지 알고 있다. 이 목록에는 당연히 허우샤오시엔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그의 촬영 미학을 보면 아 역시 이런 게 거장의 손길이구나를 느끼게 된다. 물론 여기서 느낀다는 것은 각자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각자가 무얼 느끼는지는 타인은 솔직히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찬사를 보낼 때 보내는 말도 제한적이고, 기필코 그것을 해석하려 할 때 하는 말도 제한적이니까.



거장이 만들어낸 롱숏과 롱테이크에는 그가 살아온 시간이 녹여져 있다. 이것 역시도 불완전한 말로 표현하고 있지만, 그 시간이 녹여져 있다는 것은 나이를 먹은 사람 혹은 젊은 사람, 혹은 쓸쓸해 보이는 노년과도 같은 자연 혹은 생기 어린 자연을 찍어낸 것을 보았을 때 느껴진다. 허우샤오시엔은 그 시간들을 겪어본 사람이기 때문에 그래서 자기가 아는 것을 찍어낸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허우샤오시엔의 장면은 너무나 대단하다.


어제 오랜만에 <비정성시>를 보았다. 롱숏, 롱테이크 기법 모두 이 영화를 내내 채우고 있다. 물론 영화를 보면서 아, 이건 자연을 전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선택한 롱숏이구나 혹은 아, 이건 이 사람의 마음을 천천히 보여주기 위하여 선택한 롱테이크구나 하지는 않는다. 대부분은 그냥 무자비하게 도착한 장면들을 쫓아가는 일에 가깝고 쫓아가다가 주변을 둘러보니 아, 하게 되는 일이 많다. 아무튼 이번에 <비정성시>를 보면서도 그렇게 쫓아가면서 많은 것을 보고 깨달았다.


그런데 이번에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왜 허우샤오시엔이 가까이 찍지를 않았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아니, 그걸 좀 생각해 보라고 장면들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역사를 다루는 영화들에 대해서는 정말 다양한 이론과 법칙, 혹은 예절과 윤리가 많이 논증되어 있다. 무엇 때문인가? 역사는 지나간 것이지만 현재적인 것이며, 선택된 것들만 이야기될 수밖에 없지만 선택되지 못한 바깥의 것을 항상 의심하는 기억하는 사람의 눈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 영화는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역사 영화는 항상 까다로운 회초리질을 피해야 하거나 혹은 감수하면서 찍어야 하는 영화인가? 역사를 다루는 영화는 그래서 필연적으로 불완전한가? 이런 관점과 생각밖에 없다면 이런 사람은 그냥 역사 교과서만 보는 게 나을 것이다.



<비정성시>의 카메라가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 거리와 시간을 보면서 나는 거기서 허우샤오시엔의 숨결을 느꼈다. 아주 살아있어서 가쁜 숨을 내쉬는 그런 게 아니라 숨죽이고 있다는 사실. 무언가가 두려워서 숨죽인다는 게 아니라 그 시절을 통과해서 죽지 않고 살게 된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호흡. 물론 나는 대만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은 추측에 가깝고 얼마나 '상처'와 같은 마음으로 대만 사람들이 대만의 사건을 생각하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어떠한 역사는 반드시 이야기되어야 한다. 역사 영화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세상이 더 나아가야 하는 디딤돌이 되어야 할 때에는 그저 그 디딤돌을 만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이 영화는 그래서 너무 거대한 바위 같지만 때로는 이 조약돌 같은 울림이 영화를 보는 순간에 마음에 콩콩 내리 찧는다.


이 영화에는 다양한 언어들이 사용된다. 표준어, 일본어, 민남어, 상해어 등등. (전부는 아니지만) 나는 대만 영화에 나오는 두세 가지 언어를 구분해서 듣는다. 그리고 그 언어만 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선택된 언어만이 들릴 때 아 대만 영화는 얼마나 섬세한가, 혹은 대만은 얼마나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남몰래 보여주고 있는가를 생각한다. 그럴 때마다 더 자세히 대만 영화를 이해하고 싶고 대만을 이해하고 싶어진다. 오랜만에 대만에 정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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