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대학교 선배의 청첩장 모임에 다녀왔다. 아주 아연실색한 모임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 모임을 다녀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모임을 다녀오자마자 집에 와서 잤다. 그리고 새벽 5시쯤 깨서 유튜브로 30년 전에 방송한 정은임의 영화음악 라디오를 듣고, 그다음에 유시민이 나온 프로그램도 듣게 되었다. 유시민은 자기와 맞지 않는 사람들,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하고 시간을 보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고 하였다. 나는 그 말이 참 맞다고 생각하였다.
나는 대학교에서 철학과를 나왔다. 어제 모임에서는 한 명 빼고는 모두 선배들이었고 나는 그들과 친하지는 않다. 어쩌다 보니 안 친한 내가 그들 사이에 꼽사리 끼게 된 셈이다. 누구랑 친하게 지내는 건 늘 어려운 일이다. 내가 다닌 철학과에 대해 몇 가지 소개를 하는 게 좋겠다. 남자 학우가 훨씬 많다. 한 학년이 30명이 안된다. 문자 그대로 정말 맨날 학교에서 술을 먹는다(이것도 이제는 다들 늙었으니 ‘먹었다’여야 할 것이다). 선생은 시국 선언을 하고 학생은 학생 운동을 한다 (요즘은 이런 풍조가 없을 테니 ‘했다’ 과거형으로 해야 할 것이다).
학생 운동은 곧 정치라서 이 학과는 입학하자마자 스무 살에 정치를 경험한다. 혹은 정치적인 것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다음부터는 각자의 판단에 따라 살아간다. 이건 어느 쪽을 택하든 상관없는 일이다. 물론 선생과 학생 대다수는 진보를 선택하고 실천한다. 매우 격렬하고 급진적인 사람도 많다. 내가 다닌 시절까지는 NL과 PD를 논했다. 여기까지는 20대 때의 기억이다.
어제 선배들은 변절한 자신 그리고 친구, 선생들의 우익으로의 전향을 안줏거리로 삼았다. 사람은 그렇게 바뀔 수 있다 생각한다. 왜냐하면 인간 사는 게 그렇기 때문이다. 사회생활, 경제생활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조건을 만들어버린다. 그런데 어제의 문제는 그걸 너무 이상한 방식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이었다.
철학과 사람들은 집회와 시위 그리고 구치소에 대한 기억을 저마다의 것으로 가지고 있다. 어제 자리에는 총학생회장 출신인 선배도 있었다. 이 사람은 미국이 너무 싫어서 반미 집회도 일으켰던 사람이다. 물론 이런 퍼포먼스 한 것 치고는 학교 다닐 때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다녀서 학교에서도 말이 많았다. 구치소를 갔고 언젠가는 격렬한 운동으로 학교에서 잘렸다. 그러고는 돌연 재입학을 해서 몇년 전 졸업했다고 했다. 그런데 어제는 아이폰과 애플워치를 쓴다고 했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그런데 자기는 ‘코인’으로 한 20배를 벌었다고 했다. 여기서 나는 무언가 금이 가고 있음을 느꼈다. 20배 번 것은 와이프가 모른다고 하였다. 뭐 이런 이야기를 여기서 하나 싶었다. 그런데 아마 많은 '아저씨'들은 이런 이야기를 이런 자리에서 할 것이다. 가장 이상한 건 코인에 대한 변론이었다. 나는 진보를 추구하며 여기에는 ‘기술의 진보’도 있어서 코인을 한다고 했다. 이 말은 언어적으로는 매우 논리적이다. 그러나 신념적으로는 완전히 엇나갔다. 저 말을 저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농담이긴 하겠지. 이 말에 우리 테이블은 완전히 열광의 도가니였다.
나름대로 믿고 따랐던 다른 선생들도 이제는 모두 저쪽으로 가버렸다고 한다. 학교 다닐 때 완전히 우리를 실천으로 인도해 주신 한 선생은 이제는 보수 언론에 칼럼을 쓴다고 하였다. 검색해 보니 박정희와 이승만에 대한 글 몇 가지가 나왔다. 그래 사람 나이가 80이 넘으면 그럴 수 있겠거니 싶었다. 더욱 절망적인 것은 나의 두 학번 선배도 완전히 저쪽이 되었고 또 다른 비교적 젊은 선생도 저쪽이 되었다고 한다. 듣자 하니 학교 수업에서 윤석열에 대한 어떤 발언으로 학생들의 구설수에도 올랐다고 했다. 작년 한창 떠들썩했던 때에 학교 선생들 시국 선언 이름을 일일이 찾아봤다. 철학과 선생 이름은 단 한 명 올라와 있었다.
졸업하고 나서 늘 마음의 부채 같은 게 있었다. 나는 학교 다닐 때 철학 공부를 매우 열심히 하지는 않았지만 철학, 가치관, 윤리, 믿음 이런 것들은 내 삶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어서 나에게 이걸 밝혀주는 사람은 진심으로 고맙다. 그리고 학교를 졸업한 나는 너무 속세를 사는 사람이라 여러 가지 부끄러움과 무안함으로 그들을 정말 오래 찾아보지 않았다. 하지만 어제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나는 내가 부끄러워할 이유도 무안해할 필요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내 주변의 세상과 인간들이 시시해지고 후져지고 있다. 그래도 이 와중에 몇 명 만은 나에게 버팀목이 되어주기도 한다. 어제 청첩장을 준 선배, 연구년을 맞이해 잠시 휴가를 떠난 선배. 그리고는 또 생각이 안 난다. 시시해지고 후져지는 것은 두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일부분 역시도 그렇게 무너져가는 게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나의 후진 맨살을 드러내야 하는 순간만큼은 나는 최대한으로 세상에 성의를 다해 이야기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