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수가없다

by andrei

어쩔수가없다.

이 유머러스하고 농을 치기에 딱 맞춤인 제목이, 그래서 엉뚱하고 발랄한 언표로 회자되는 가벼운 깃털 같은 문장이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심각한 고민을 퇴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쩔수가없다'는 "어쩔 수가 없므로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 "어쩔 수가 없으므로 이렇게 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어쩔 수가 없다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내가 이야기하고 내가 직시하면서, 슬픈 초상을 자인하는 혼잣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제목은 정말로 무겁고 영화의 모든 순간을 짓누른다. 영화에서 수 없이 자주 '올라감' 혹은 '상승'의 이미지가 나타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영화의 주인공은 올라가는 것에 실패한다. 미끄러지고 또 무너진다. 그래서 도리어 땅 밑으로, 땅을 파는 것에 몰두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땅 밑으로 파고들어 뒤끝 없고 완전한 행복을 만드는 것에는 실패한다.


박찬욱 영화는 언제나 남성이 실패하는 이야기를 표현주의의 틀을 가지고 우아하게 만들어낸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의 남성의 실패는 조금 이상하다. 우아하지도 않고 고색창연하지도 않다. 춤을 추지 않아도 내내 춤을 추는 것 같은 박찬욱의 영화가 이번에는 왠지 부자연스러운 움직임, 때를 놓쳐서 리듬을 잃어버린, 결국은 지연된 움직임에 가득 차있다. 표현의 거장답게 표현으로 채색하기 위해서는 빠르게 붓을 들고 칠을 해야 하는데, 단절해야 하는 어떤 것에 일말의 연대나 동류의식이 자꾸 발견되기 때문에 빠른 실행에서 계속 실패하는 것 같다. 만수도 실패하고, 박찬욱도 실패하며, 영화도 실패한다. 박찬욱이 이렇게 지연을 표현하는 일이 왠지 낯설면서도 갑자기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현실에서 흔히들 마주치는 실패하는 연대, 재빠른 결심과 실천을 망설이게 하는 애처로운 순간들. 이런 순간들이 어쩔수가없다라는 말속에서 온전한 자리를 찾지 못한 채 만수를 괴롭게 한다.


maxresdefault.jpg


영화가 끝나고 생각해 보니 이 제목만큼 이 영화를, 아니 이 영화가 가진 세계를 설명할 수 있는 문장은 없어 보인다. 그리고 왜 띄어쓰기가 없이 쓰였는지도 그 의도가 읽힌다. 어쩔 수가 없다는 표현 자체에 이미 세상의 기대와 질서, 그리고 이 또한 이것은 나에 대한 기대와 질서에 대하여 나 자신이 그것을 엄수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을(그래서 어느 정도는 쓸모가 없는 사람이 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사살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 제목은 영화의 제목이기는 하지만 박찬욱이 계속 되뇌는 혼잣말이다. 그동안 박찬욱 영화를 보면서 박찬욱이 보인다, 혹은 박찬욱이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은 적은 없는데 이 영화는 2시간 내내 박찬욱의 잔상이 보이는 영화다. 박찬욱 감독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박찬욱 감독이 만든 영화인 사실쯤은 알고 이 영화를 본다면 내내 그 사람이 중첩되며 이상한 안타까움에 빠져들게 된다. 그래도 기어코 만수의 삶에서 중요한 것을 지속한 것처럼, 박찬욱의 다음 영화도 지속되길 바랄 뿐이며 박찬욱의 다음 영화도 기대할 수밖에 없다.

작가의 이전글찢어진 자객이 등장하는 무협의 이미지 <영웅본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