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 미디어 육체와 배우 육체 사이의 힘빠지는 대결

by andrei


실제 사건과 실존 인물을 토대로 한 <승부>는 그 시절을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 영화 속 당대의 미디어 창을 때때로 바라본다. 다만 <승부>가 바라보고 있는 미디어는 관객의 역사적 사실 이해에 협력하는 도구 수준을 넘어서, 미디어 도구가 가진 특별한 권위인 미디어 메시지의 육체성이 영화를 바라보는 관객의 감정 몰입을 짓누른다. <승부>의 오프닝은 당대 최고의 바둑기사 조훈현과 중국의 섭위평이 출전한 응창기배 세계 바둑대회 결승전을 결의에 찬 중계방송 캐스터가 소개하는 중계 음성으로 시작된다. 이어서 호텔방에서 대국을 준비하는 조훈현을 짧게 비춘 뒤, 대국장으로 입장하는 레드카펫 위의 그를 한국과 중국의 많은 취재 기자들이 에워싸는 그림으로 보여준다. 이어서 수많은 카메라와 플래시가 이 순간의 모든 긴박감을 빨아들이려는 듯 조훈현이라는 피사체를 과격하게 찍어대기에 이른다. 영화 속 미디어 언어의 판형에 짓눌린 관객은 어쩔 수 없이 영화 <승부>에 대한 고유한 감상을 창조적으로 하기보다는, 조훈현과 이창호가 벌이는 ‘승부’에 대한 감상을 당시의 미디어 메시지를 습득했을 때처럼 반복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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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메시지의 과격한 육체성


오프닝 시퀀스의 장막을 여는 건 짐짓 긴장하는 듯하면서도 빈틈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조훈현의 얼굴이기는 하지만, 이내 역동적인 운동감으로 들이닥치는 것은 수많은 기자의 눈 그리고 대중의 눈을 대신하여 역할을 수행하는 카메라의 눈이다. 대국장 안에서도 수많은 카메라와 플래시의 눈은 쉬지를 않는다. 영화의 타이틀이 노출되고, 이어서 보이는 TV 브라운관 속 뉴스 영상과 종이 신문에 박제된 은관문화훈장 수여 소식은 조훈현의 위대함을 경제적으로 전시한다. 관객은 오프닝 시퀀스를 흡수하면서 당시 TV, 신문 미디어의 관점과 메시지를 아주 빠르게 학습하게 된다. 그런데 초반의 이와 같은 전략은 <승부>가 관객들에게 겨우 TV나 신문과 같은 관점을 가지고 익숙하게 이 이야기를 바라보게 하려는 목적은 아니다. 오프닝 시퀀스의 미디어 활용은 그 시절 조훈현의 위상과 업적을 빠르게 인지시키려는 순수한 의도에 가깝다. 여기까지는 그렇다.


이어서 영화는 조훈현과 이창호 두 인물을 만나게 한다. 그리고 수많은 날을 거듭하면서 이어지는 겨루기의 순간 혹은 이에 준하는 신경전의 순간마다, 미디어 역할을 대신하는 다양한 중계자의 육성은 매 사건의 캐스터처럼 등장한다. 이사범과 백사범은 두 주인공이 충돌하는 순간마다 마치 약속된 변사처럼 등장해 스크린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을 깔끔하게 요약해서 설명해 준다. 가장 압권인 것은 이들을 실제 바둑 해설 위원으로까지 활용하는 경지인데, 마침내 이들은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대국의 중계 현장에 침투하여 두 주인공의 결정적인 순간을 공식적으로 전파하는 해설위원으로 활용되기에 이른다. 실제 방송을 모사하는 듯한 <승부>의 대국 중계 연출 역시 장점보다는 단점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은 영화상 최후의 승부를 겨룰 때 확실하게 입증된다.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조훈현이 역전하는 순간, 캐스터는 조훈현이 “지옥 같은 터널을벗어났다”라고 말한다. 마치 조훈현 그리고 지금 <승부>를 보고 있는 관객이 다 함께 벗어나야만 하는, 벗어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무너질 위기에 처한 것처럼 캐스터는 이 대국의 결말을 조훈현이 되찾은 평화처럼 묘사하면서 관객 또한 이 감정에 합승하여 터널 바깥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를 요구한다. 말을 내뱉을 수 있는 다양한 주변 인물의 언술은 관객이 영화 이미지와 소리로 단번에 캐치하기 어려운 갈등과 불안을 명석하게 짚어낸다. 그러나 관객이 영화 <승부>를 선택한 이유는 캐스터의 힘찬 육성을 들으며 그 시절 명승부를 조훈현의 편에서 다시 보기 위함이 아니다. 인물과 사건의 위대함을 과거 TV 뉴스 마냥 반복 시청하면서 벅차오름이나 감격의 감정을 다시금 맞이하고 싶은 회고적 태도 또한 아니다. 영화는 스크린 위에 중계되는 사건의 목격을 넘어, 상상의 지평 위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감정의 기보를 분석하는 능동적인 순간에 비로소 완성되는 예술이다. <승부>가 간단하게 취해버린 변사, 캐스터의 잦은 배치는 관객이 자유롭게 해낼 수 있는 감정 해석의 여유를 차단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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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답기 위하여 배우의 육체로 만든 작은 숨구멍


역사를 다루는 영화가 단순 재현, 중첩으로 느껴지지 않고 또 다른 어떤 것으로 보이는 이유 중 하나는 실존 인물로 분한 배우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생동적인 질감 때문일 것이다. 모든 관객은 역사적 사실, 사건의 결말을 알고 있다. 그러나 영화 속 인물은 그것을 바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건으로 맞이하면서 능동적으로 이에 상호작용한다. <승부>의 조훈현은 혹시 지금 이러이러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걸까?라는, 영화적 상상력으로 가공된 감정의 예측불허가 느껴질 때 관객은 이미 뻔하게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마저도 잠시 망각한 채 영화의 플롯에 같은 발걸음으로 동행할 수 있다. <승부> 속 다양한 미디어 메시지가 관객보다 앞서서 사건을 정리해 버릴 때, 주인공으로 분한 이병헌과 유아인은 단정적으로 설명 불가능한 감정을 각자의 육체로 발현하면서 영화 안에 조그마한 숨구멍을 파놓는다. 다만 어느 정도는 설계된 느낌을 주는 건 아쉬운 일이다. 배우 이병헌은 조훈현 명장의 ‘명언’을 규칙적으로 대놓고 읊어준다. 모두가 예상하듯 여기서 아주 효과적으로 활용되는 건 바로 그 배우의 육성이라는 전달 매체이다. 별것 아닌 대사도 심각하게 큰 울림으로 만드는 이병헌의 목소리 덕분인지, 작정하고 구성된 조훈현의 명언은 <승부>가 대중에게 선사해야만 하는 위인 영화의 도덕적 책무를 간단하게 해결한다. 초반에는 “바둑은 답이 없다고 하잖아요”, 중반에는 “선생으로서 항상 네가 자랑스러웠다. 넌 늘 내 자부심이었어” , 말미에 이르러서는 “바둑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그의 목소리는 영화 밖으로 파장을 일으켜 예의 그 감동을 선사한다. 그러나 손쉽게 이루어진, 약속된 감동이라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모두의 기대에 이병헌이라는 배우가 목소리로 부응하고 관객은 약속대로 감응하고 있을 때, 배우 유아인이 만든 잔잔하면서도 매서운 파도가 갑자기 밀려와 도덕적으로 숭엄해지는 순간이 있다. 이는 역사적 사실을 충분히 아는 바 예상 범주에 있는 감동의 ‘킥’ 임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러운 시청각의 파편이 유아인의 육체를 거쳐서 튀어나올 때마다 스크린 바깥에 있는 관객의 심장에 화살처럼 꽂혀버린다. 제자 이창호는 스승 조훈현을 뛰어넘은 후 “죄송하다”는 말을 다양한 상황에서 내뱉는다. 여러 번 등장하는 죄송하다는 말은 이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으로 하여금 새삼스럽게 두 사람의 올바른 상하 배치는 무엇인가 고뇌하게 한다. 이 말은 유교의 관습과 문화가 남아있는 국가에서 예의범절과 질서를 학습한 관객에게는 겸손 그 이상의 파동으로 지극하게 전해질 수밖에 없어서, 당연하게도 신파의 제물로 사용된다. 이 역시 약속된 신파의 수순이다. 그래도 미안함을 이야기하는 이창호의 다양한 순간에, 이창호를 연기한 유아인의 눈은 이 미안한 감정을 신파적으로 전시하기 위해 미안함을 가득 담은 눈동자를 가짜로 만들지 않는다. 이창호로 분한 배우의 육체는 실제 이창호가 그러했던 것처럼 반쯤 뜬 눈으로 항상 아래로만 시선을 유지한 채, 그 누구도 똑바로 바라보지 않고 자신의 기풍과 윤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승부>의 흔치 않은 미덕은 베테랑 배우들의 노련한 연기술로 이루어진 배우라는 육체 미디어를 활용하는 순간에 있다. 그러나 이 조그마한 몇 가지 숨구멍은 <승부>를 빡빡하게 에워싼 정돈된 미디어와 중계 메시지의 틈을 벌리기에는 충분하지가 않다.



턱 없이 부족한 영화다운 순간


국수의 기풍과 정신이 바둑판 위에서 예술적인 기예로 승화되는 게 바로 바둑이다. 그리고 기예의 기술적 해석을 넘어 바둑의 진정한 도를 펼쳐 보이는 국수의 절차탁마는 대국 중계나 대국 결과를 다루는 TV 뉴스나 신문 기사를 통해서도 간접 감응할 수 있겠지만, 영화는 그보다 더 직접적인 감정의 이입과 정동을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승부>는 과거사 재방송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영화가 되는 순간의 잠재력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승부>가 더욱 밀고 나가야 했던 것은 판세가 뒤집히고 승부가 결정 나는 순간에 예측불허하게 발생하는, 스승과 제자의 질서가 무너지는 폐허 속에서 꿋꿋이 나의 길을 걸어가야만 하는 각자의 비극 감정이다. 대국이 이어질수록 각자의 비극은 각자의 방식으로 쌓아 올려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를 영상화한 결과는 인물 혹은 현재의 장소를 관습적인 회전 촬영으로 처리하거나 형식적인 트래킹 쇼트의 지루한 나열일 뿐이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 하나의 인상 깊은 카메라의 움직임이 포착된다. 조훈현이 처음으로 이창호에게 꺾이는 바로 그 대국, 그는 어찌할 도리 없이 무너지게 되는 순간에 이른다. 이때 조훈현은, 아니 배우 이병헌의 입에서는 “안되나?”라는 짧은 혼잣말이 튀어나온다. 그 어떤 변사의 목소리도 중계 음성도 존재하지 않는 순간에 이 영화는 비로소 영화다움을 드러낸다. 예상을 ‘뒤집어 버리는’ 승패처럼 거꾸로 뒤집힌 채 붕괴되어 버리는 그의 심리를 카메라가 뒤집히는 몸짓으로 표현해 내는 아름다운 순간. 결과적으로 조훈현이 이창호에게 처음으로 무너져 버리는 패배의 순간에 비로소 <승부>는 영화다운 멋과 기풍을 카메라의 움직임과 이병헌의 육체로 보여주었다. 그러나 단 한 번의 기예로는 도저히 ‘안 되는’ 일이고 턱 없이 부족했다. <승부>가 보다 집중해야 했던 것은 조훈현과 이창호가 흔들리고, 무너지고, 다시 견고해지는 과정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육체를 통한 우아한 탐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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