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슬희 <웰컴 투 마이홈>

by andrei

영화와의 만남이 늘 그렇지만, 뜻하지 않게 좋은 작품을 만나면 한동안은 내내 그 영화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뿌듯함으로 가득 찬다. 이건 참 영화 애호가가 손쉽게 행복을 발견하는 방법이다. 이런 뿌듯한 기분의 본질은 무엇일까를 골똘히 생각해 보면, 단지 아름다운 작품을 만나서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실은 좋은 감독을 발견해서 기쁜 것이다. 이건 참 영화 애호가가 손쉽게 뿌듯함을 발견하는 방법이다.


한동안은 독립 단편 영화에서 이런 기분을 느끼지는 못했다. 이제는 독립 단편 영화를 부지런히 찾아보는 편은 아니라 이런 이야기를 당당히 얘기할 계제는 못되기는 해도. 아무튼 최근에 제5회 성북청춘불패영화제를 다녀왔다. 여기서 우연히 박슬희 감독의 <웰컴 투 마이 홈>을 발견하게 되었다. 요즘은 웬만해서는 감독의 이름을 기억하고 미래에 대한 기대는 잘하지 않는 편인데 이 작품은 첫 장면부터 그렇게 나를 이끌었다. 마지막 장면까지도 나를 이끌었다. 나는 이것을 보았다는 표현보다는 발견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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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작품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각 가족 구성원마다 달려있는 날실과도 같은 끈을 잡아서 그것을 작위적인 느낌 하나 없이 스리슬쩍 씨실로 묶어내는(엮어내는) 감독의 기술이었다. 굳이 명징하게 이야기하자면 그 씨실은 영화 속에서 '네잎클로버(들)'로 등장한다. 네잎클로버는 이 새로운 형태의 가족 구성원들을 이리저리 거치더니 이내 하나씩 가족들이 나눠 가지게 된다. 별 다른 사건이 없는 이 영화는 이 사소한 네잎클로버(들)의 여행을 스리슬쩍 플롯으로 만들어 놓는다.


이 가족은 네잎클로버로 조금 더 가까워지기도 하고, 의외로 네잎클로버에 관한 어떤 이야기들은 가족 중 어떤 누군가에게는 하지 않기도 한다. 그러니까 당황스럽게도 가족 다큐멘터리이자 에세이 필름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안의 등장인물은 모르는데 영화 바깥의 관객만이 알고 있는 서스펜스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뭔가 이상한 서스펜스다. 이걸 방금 서스펜스라고 정의했지만 실은 서스펜스가 아니다. 이것은 감독이 가족을 대하는 배려이자 아끼는 마음에 가까웠다. 아, 이런 게 사랑인가 싶었다. 세상의 영화들은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에 그리고 감독 자신이 이 가족의 일원으로서 그저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어떤 작위적인 기지를 발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설사 그렇다 한들 관객은 이 가족의 내막을 잘 모르기 때문에 무엇이 우연이고 작위인지를 가늠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 피어난 네잎클로버의 시네마틱한 순간이 네잎클로버의 행운처럼 혹은 기적처럼 다가온 것일까?


아닐 것이다. 이것은 내가 아직도, 여전히, 늘, 매일 같이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인 감독이 세상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가지고 영화로 담아내는지의 문제라 생각한다. 영화를 다 보고 나오는 길에 박슬희 감독을 보았고 무언가 더 많은 응원을 보내고 싶었으나 괜한 이야기인가 싶어 하지 못했다. 뉴스 기사를 찾아보니 차기작을 준비 중이라는 인터뷰 내용이 보인다. 다음 작품을 반드시 기대해야겠다.


2025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 예정이다. https://siff.kr/films/%EC%9B%B0%EC%BB%B4-%ED%88%AC-%EB%A7%88%EC%9D%B4-%ED%9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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