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관한 강의를 들었다.
강의 제목은, <삶을 돌아보는 질문 그리고 깨달음>이다. 죽음에 관해 어떤 계기가 있어서 들은 강의는 아니다. 죽음에 관해 어떤 내용을 이야기할지 궁금해서 듣게 되었다. 삶은 죽음을 향해 가는 여정이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공감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는 죽음을 향해 가기 때문이다. 이 강의에서도 비슷하게 죽음을 생각하는 기간에 관해 설명했다. 죽음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더 잘 살기 위해서다.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생각할 때 현재 삶에 더 충실할 수 있다. 강연에서도 죽음을, 당하지 말고, 맞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맞이한다는 표현이 마음에 와닿았다. 현실에서는 죽음이라는 단어 자체를 꺼린다. 찜찜한 느낌도 들고, 재수 없는 소리 한다고 핀잔을 듣기도 한다. 부정하고 싶은 거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5단계가 있다고 한다.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이다. 처음에는 부정한다. 누구라도 죽음이 다가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라는 생각이 들 거다. 다음은 분노다. 왜 나여야 하는가에 관한 생각이, 분노를 일으킨다. 딱히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냐는 의문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자주 보는 장면이다. “왜 난데?”라며 울부짖는다. 분노가 사그라지면 타협한다. 기도하는 거다. 이번에 살려주면, 더 잘 살겠다고 말이다. 방법이 없다는 한계를 느끼면 우울감으로 빠져든다. 어찌할 수 없다는 생각이 그렇게 만든다. 시간이 지나면, 받아들이게 된다. 비로소 차분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거다.
죽음의 5단계를 듣고 든 생각이 있다.
‘죽음만 그럴까?’ 일반적으로 좋지 않은 일을 당할 때도, 이와 비슷한 단계를 거친다. 삶에 가장 좋지 않은 일이라 여기는 죽음이 그러니, 다른 안 좋은 일도 그런 듯하다. 일이 생기면 받아들이지 않다가 분노한다. 마음이 좀 사그라지면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떠올리고 조율할 것을 조율한다. 한계에 부닥치면 우울한 마음이 올라오고, 나중에는 결국, 현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감정 상태를 그래프로 그리면, 점점 올라갔다가 분노에서 절정을 찍고 점차 내려오게 되는 모양일듯하다.
분노에 관해 생각해 본다.
죽음이나 안 좋은 일에 관해 분노하는 이유는,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왜 나여야 하냐는 거다. 그런 일이 왜 자신에게 일어나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드는 의문이 있다. ‘왜 나여서는 안 된다는 거지? 다른 사람은 괜찮다는 말인가?’ 박신양 배우의 강연에서도 이런 내용이 나온다. “왜 당신의 인생이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항상 좋은 일만 있어야 하고 힘들지 않은 일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은? 그건 알 바 아니다.
받아들여야 한다.
받아들이면 분노하지 않는다. 좋은 것도 받아들이고 안 좋은 것도 받아들여야 한다. 어떤 일이든 내 삶에 벌어진 일이다. 반찬 골라 먹듯 그렇게, 먹고 싶은 것만 먹을 순 없다. 스포츠에서도 이기는 날이 있으며 지는 날도 있다. 응원하는 팀이 항상 이겼으면 좋겠지만, 그럴 일은 없다. 승리도 패배도 다 받아들여야 한다. 이길 때는 좋다고 하면서 졌다고 분노하면 되겠는가? 진정한 펜이라면, 이길 때나 질 때나 똑같이 응원해 주어야 한다. 내 삶도 마찬가지다. 내 삶이 중요하고 스스로 주인으로 여긴다면, 좋은 일이 있을 때나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나 항상 응원해 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