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단정할 때가 있다.
평소 혹은 이전에 그랬기 때문에, 당연히 그럴 것으로 판단하는 거다. 소소한 예로 이런 게 있다. 동료 여럿이서 밥을 먹고 카페에 간다. 주문하는데, 안 보이는 사람이 있다. 담배를 피우는지 화장실을 갔는지 알 수 없다. 뭘 시켜달라고 이야기하지도 않았다. 전화해서 묻거나 기다리면 되는데, 평소에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신다는 게 떠올라, 그냥 주문한다. 주문한 메뉴가 나왔는데, 그 사람의 표정이 좋지 않다. 그날은 날이 좀 차가워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싶었던 거다. 미리 말하지 않고 자리를 비운 건 그 사람의 잘못이지만, 묻지 않고 단정해서 주문한 것도 잘한 것이라 말할 순 없다.
커피 정도는 그럴 수 있다고 치자.
단정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려주는 이솝우화가 있다.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다. 많이 알려진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버전이 여러 개가 있다는 말도 있다. 메시지는 같으니,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렇다. 여우가 두루미를 식사에 초대했다. 두루미가 오자 여우는 반갑게 맞았다. 평소 자신이 사용하던 둥근 접시에 음식을 담아서 내놓았다. 부리가 긴 두루미는 음식을 먹지 못하고 쫄쫄 굶고 돌아왔다. 두루미는 여우가 일부러 그런 것으로 여기고, 복수하기로 마음먹었다. 며칠 뒤 두루미는 여우를 초대했다. 두루미도 여우를 반갑게 맞이했고, 호리병에 음식을 담아 내놓았다. 이번에는 주둥이가 짧은 여우가 음식을 먹지 못했다.
당연하게 여겼다.
평소 별생각 없이 사용하던 도구였기에 당연히 괜찮을 것으로 생각했다. 두루미는 여우의 사정을, 여우는 두루미의 사정을 헤아리지 못한 거다. 이 이야기에서 좀 의아한 점이 있긴 하다. 여우가, 접시에 담긴 음식을 먹지 못하고 안간힘을 쓰는 두루미를 보지 못했을까? 봤는데도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을까? 분명히 봤을 것이고, 봤다면 다른 도구를 이용해서 먹을 수 있게 해줬을 텐데 말이다. 도구가 없으면 옆집에 가서 빌려오던지, 최소한 두루미의 상황을 헤아리지 못한 부분을 사과했을 거다. 메시지 전달을 위해 이런 부분이 생략됐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섣불리 단정하는 것도 판단이다.
판단이 들어가면 내 마음대로 하게 된다. 상대방의 의견이나 의지를 확인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하고, 당연히 마음에 들 것으로 판단한다. 매우 이기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음식을 권유할 때도 그렇다. 맛있는 음식을 나누고 싶은 마음은 알지만, 이미 배가 충분히 부른 상태거나 좋아하지 않은 음식이라 사양하는데도 막무가내다. 먹지 않으면 성의를 거부한 사람 취급까지 한다. 자기 생각을 강요하는, 다른 모습의 폭력이 아닐 수 없다.
당연할지 몰라도, 물어봐야 한다.
자기는 좋지만, 타인은 좋지 않을 수 있다. 어쩌면 싫어할 수도 있다. 항상 그렇더라도 한 번쯤 바꾸고 싶은 마음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홉 번은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셨더라도, 이번에는 따뜻한 음료 혹은 다른 음료를 마시고 싶을지도 모른다. 최소한 “아이스아메리카노 맞지?”라는 확인 정도는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배려이고, 존중이다. 가까울수록 더 잘 지켜야 하는 두 가지다. 이 두 가지가 무너지면, 서로의 신뢰가 무너지고 관계가 무너진다.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도 중요하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광고 노랫말이 감성적이긴 해도, 잘못된 표현 방법을 종용했다는 것을 부정하진 못할 거다. 말하지 않은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사람을, 매정한 사람으로 만들었으니 말이다.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알아차려 주면 좋겠지만, 잘 안 되는 사람도 있다. 그거라고 생각했지만, 저기인 경우도 있다. 앞선 커피의 예처럼 말이다. 성격 유형 분석을 해보면, 사람의 성격도 상황에 따라 달라질 때가 있다. 하물며 취향이나 원하는 것이야 오죽하겠는가. 자주 대화하면서 소통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지 싶다.
“어떻게 생각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