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역할

by 청리성 김작가
함께 살기 위해, 개인이 꼭 해야 할 것

전쟁영화를 보면, 고전영화나 현대 영화나, 지휘관이 이렇게 명령하는 것을 본다.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처음에는 이 말을 들었을 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죽고자 한다는 것은 무모하게 덤벼드는 것이니, 죽을 확률이 높을 것으로 생각했다.

살고자 한다는 것은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니, 살 확률이 높을 것으로 생각했다.

일상에서도 덤벙거리는 사람은 자주 실수하고 비난을 받지만,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은 좋은 평판을 얻기 때문이다.

최근에, ‘고지전’이라는 전쟁영화를 봤다.

전에 봤었는데, 다시 보고 싶어서 봤다.

전쟁에서 정신적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모인 ‘악어부대’라는 곳이 있다.

최전방에서 북한군과 거의 매일 전투를 벌인다.

중요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전투를 벌이는 것이다.

그 고지를 점령하는 쪽이, 더 많은 영토를 확보하기 때문이다.

휴전선이 그어진다면, 그때 그 고지를 점령하고 있는 쪽이 승자라고 볼 수 있다.


서로 빼앗기도 하고 뺏기기도 하는 전투를 하던 중, 아지트 같은 곳에, 무언가를 묻어두고 가기 시작한다. 어차피 다시 빼앗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술도 있고 담배도 있고 그 밖에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러다가 서로를 위해 무언가를 두고 가기 시작한다. 소통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얼굴을 모르는 적과 동침이 시작된다.

전투하면서 지친 마음을 그렇게 달랬다.

그러다가 휴전이 되는 시점이 정해지고, 최후의 전투가 시작된다.

죽고 죽이는 전투를 벌이는 장면에서 잔혹한 장면이 나온다.

좋게 말하면 실감 나는 장면이다. 그때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저렇게 싸우려고 덤벼들지 말고, 그냥 시체 옆에 누웠다가 잠잠해지면 도망치지!’


오래지 않아,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전투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그런 마음을 갖는다면, 모두가 전멸할 것이기 때문이다.

전쟁이라는 긴박한 상황이 아니라, 일상의 모습도 그렇다.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하지 않는 공동체는, 전멸의 길로 간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사람이, 죽고자 하는 사람이다.

자신보다 함께 하는 사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희생하고 공동체에 이바지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이 돌아가는 이유는, 곳곳에서 자신을 죽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죽고자 하는 사람들로, 자신도 살고 공동체도 살리는 것이다.

이전 18화48. 십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