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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각

by 청리성 김작가

“올해 쉰입니다.”

벌써? 영광은 자기 나이를 말하고, 놀란 표정으로 앞사람을 응시했다. 그가 뭐라고 해서 그런 건 아니지만, 그걸 왜 지금 알려주냐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누가 물어보기 전까지는 굳이 나이를 기억할 이유가 없었기에, 무심코 내려놓은 자기 말에 스스로 놀랐다. 어르신들이 ‘반백 살’이라고 말씀하실 때 꽤 늙었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이 그 지점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니 허한 기분이 든 거다. 영광은 세월이 가리키는 자리와 자기가 인지하고 있는 자리의 시간 차이로 잠시 혼란스러웠다. ‘뭐야! 별로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벌써 반백 살이라니….’ 그렇다. 영광은 가끔 지난 시간을 돌아보기는 했지만, 현재와 지나간 시간의 간격이 이렇게 벌어졌는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뭘 하면서 지금까지 왔는지 스스로 설명할 시간이 필요했다. 설명되지 않는 삶은, 허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몰려왔다. 영광의 머릿속에서는 어린 시절에 강렬했던 기억과 학창 시절 잊을 수 없는 기억 그리고 성인이 되고 지금까지 오는 여정의 순간들이 사진첩을 넘기듯 한 장씩 넘어가고 있었다. 너무도 빠르게 넘어가는 사진첩을 천천히 넘겨보며 회상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지금까지 그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이야기하거나 오랜만에 만난 사람을 통해 그때의 추억을 소환했을 뿐, 스스로 찬찬히 걸어온 길을 돌아보진 않았던 거다. 지금이 기회라 여겼다. 영광은 지난 마흔이 됐을 때도 이런 기회를 가지려 했지만, 생각에 그치고 말았었다. 먹고 사는 문제가 그를 가만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떨어진 체력도 한몫했다. 영광은 선배로부터, ‘3’자에서 ‘4’자로 넘어갈 때, 체력이 훅 떨어진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며칠 사이로 그렇게 된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앞자리 ‘4’자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특별히 무리하거나 대단한 무언가를 한 것도 아닌데 그랬다. 영광은 자신이 핸드폰 배터리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2년이 되면 신기하게도, 멀쩡하던 핸드폰 배터리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현상처럼 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신체 배터리의 수명은 점차 급격하게 떨어질 거다. 영광은 더는 미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자서전까지는 아니더라도 명확하게 살피고 싶었다. 언제 어느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누가 있었는지를 말이다. 물 위에 있는 나뭇잎이 물결에 따라 흘러가듯 자신을 지금의 자리로 안내한 물결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영광은 자리에서 빨리 벗어나야 했다. 이 다짐이 또 사그라지지 않도록 당장 무언가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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