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의 시간을 가지고 오랜 시간 마음이 머물렀을 때, 얻을 수 있는 선물
야심 차게 ‘소고기 뭇국’을 끓인 적이 있었다.
요리를 자주 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소질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자취할 때는 김치찌개를 비롯한 다양한 음식을 해서 먹어 본 경험이 있다. 아이들에게 달걀 볶음밥을 해주면, 맛있다며 금세 먹어 치우곤 했다. 음식을 시켜 먹고 남은 국물을 이용해 비비거나 볶아서 먹기도 한다.
소고기 뭇국을 끓이게 된 것은, 아내가 먹고 싶다며, 한 번 해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학교에 가지 않는 세 아이의 밥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매우 고돼 다고 하소연하는 아내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해 주고자 두 팔을 걷어붙였다. 인터넷으로 조리법을 훑어보니, 그리 어렵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메뉴를 기름에 볶고 물을 넣고 끓이다가 갖은양념을 넣는 순서는, 일반적인 국이나 찌개를 끓이는 것과 비슷했다.
조리법대로 잘 진행되고 있었고, 간을 맞추기 위해 조선간장을 넣을 차례가 되었다.
싱크대 위와 양념들이 모여있는 곳을 둘러봤는데, 딱히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간장 색상의 라벨을 두르고 있는 하나의 양념통을 발견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아내가 요리할 때, 이것을 가끔 넣는 것이 떠올랐다. 숟가락을 대고 몇 번을 따라 넣었다. 하얗던 국물이 소고기 익힌 색과 비슷해지는 것을 보고, 제대로 넣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전에 먹었던 국물의 색과 비슷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인의 깊은 맛, 다시다를 넣고 잘 저었다. 끓이다 국물을 떠먹어보고, 간을 맞추면서 조금씩 더 넣었다. 맛이 맞는 것 같긴 한데, 뭔가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념이 덜 들어간 것 같다는 생각에 조금씩 몇 번을 더 넣고 최대한 맛을 맞추려고 노력했다. 너무 끓였는지 무가 좀 흐물흐물해진 것 같아, 불을 끄고 식탁에 올렸다.
일전에 먹던 맛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우려 속에, 아내와 아이들이 국물을 떠먹었다.
다행히 반응은 좋았다. 마음을 쓸어내리면서 안도하고 있는데, 맛이 좀 색다르다는 의견이 나왔다. 필자는, 당당하게 싱크대 위에 있던 양념통을 가리켰다. 아내와 아이들은 ‘헐’이라는 표정으로, 그 양념통의 정체를 밝혔다. 그것은 조선간장이 아니라, 굴 소스였다. 약간 비리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 정체를 알았다. 한바탕 웃고 나서, 그래도 색다른 맛이라며, 가족들은 맛있게 국을 다 먹었다.
조리법대로 하지 않았지만, 정확히 말하면 하지 못했지만, 좋은 맛을 냈다.
간을 맞춘다는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만약 식초 같은 양념이 들어갔다면, 최악의 국이 됐을 거다. 그러고 보면, 세상의 많은 발명품이 예상치 못했던 과정으로 만들어졌다. 가장 많이 드는 일화가, 포스트잇이다. 강력한 접착제를 개발하려고 하다, 실수로 접착력이 약한 접착제를 만들게 된다. 그러다 잘 떨어지는 성질을 이용한, 포스트잇이 세상에 나왔다. 지혜로운 발견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칫 실패한 접착제로 잊힐 수 있었던 것을, 필요한 곳에 적절하게 적용해서, 활용 가치를 높였다.
한 가지 생각에 몰두하면, 전에는 생각지 못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적용하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적용하게 되고, 생각을 이어 붙이게 된다. 그렇게, 새로운 발견을 하는, 지혜가 생겨난다. 지혜는, 그 생각에 얼마나 오래 머물렀냐는, 인내의 시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선물이다. 논리적인 이해를 통한 과정 이외에, 마음을 담아야 한다. 지식과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차이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 마음이 머무는 곳에, 필요한 지혜가 머물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