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 성령 기도회가 발족한 지 2달이 됐다.
기간으로는 얼마 되지 않은데, 매주 준비하고 진행해서 그런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느낌이 든다. 기한 없이, 매주 정해진 날짜와 시간에 하는 것은 부담이 있다. 부담감 때문에 주변에서 기도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재촉했어도, 하지 않았던 이유다. 지난 6월, 성령 묵상회를 통해 조금씩 마음의 문이 열리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표가, ‘하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느낌표로 바뀐 거다. 결심하니 다음은 일사천리였다. 도와주시려고 대기(?)하시는 분들 덕분이었다. 본당 주임 신부님께서도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셨다. 모든 것이 마련되어 있었다는 느낌이었다.
다행히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교구에서 강사님도 파견해 주시고, 신부님 미사도 있다. 다른 날은 내가 말씀과 묵상을 중심으로 나눔을 준비해서 진행한다. 아내는 찬양 시간을 준비하고 진행하는데, 찬양은 함께한다. 봉사자 있을지 걱정했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5분의 봉사자가 함께하신다. 우리 부부까지 7명이 함께, 기도회를 준비하고 진행한다. 어제도 잘 진행되었다. 주제는 <두려움에서 용기로 넘어가는 지혜>였다. 네 번째 책, <두려움에서 용기로 넘어가는 셀프 코칭>의 제목을 빌렸고, 책의 내용을 인용했다.
매일 글 쓴 효과를, 기도회에서도 보고 있다.
복음을 묵상한 내용으로 쓴 글로, 다섯 권의 책으로 출간했다. 출간만으로도 큰 효과를 봤다고 여겼는데, 기도회에서도 큰 도움을 받다니. 꾸준함의 효과를 톡톡히 본다는 느낌이 든다. 말씀과 묵상 나눔을 준비하는 과정은 이렇다. 주제를 정한다. 어떤 주제가 기도회 회원분들께 도움이 될지 고민하고 결정한다. 주제가 결정되면, 관련된 말씀을 찾는다. 찾은 말씀 구절을 블로그에서 검색한다. 관련된 글이 나오면, 그중에서 적절한 글을 뽑고 내용을 구성한다. 묵상 내용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나눔 사례로 사용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며칠씩 걸려서 준비한 것을 이제는 몇 번 해봤다고, 2~3시간이면 기본 준비는 가능해졌다.
<두려움에서 용기로 넘어가는 지혜>도 그랬다.
적절한 말씀을 뽑고 묵상 글을 적어 나갔다. 묵상 글은 새롭게 떠오른 내용으로 길지 않게 구성했다. 나눔 사례는 기존에 쓴 글 중심으로 수정해서 준비했다. 준비하는 동안, 글을 썼을 때의 시점과 경험한 그때의 시점으로 돌아가게 됐다. 느낌이 고스란히 올라왔다. 잠시 그 시간에 젖어 들었다. 10년도 더 된 시점인데도, 생각하게 느낌이 올라왔다. 강렬했던 느낌 때문이지 않았나 싶다. 주제처럼, 두려움을 느끼고 걱정과 어둠에 휩싸였을 때라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암담했고, 갈피를 잡지 못할 지경까지 이른 적도 있었다.
그 안에는 모두 가족이 연결되어 있었다.
혼자였다면 그렇게까지 고민할 일도 아니었다. 어렵지 않게 선택했을 거다. 가장의 무게랄까? 그 무게가 힘겨움을 더했다. 삶의 갈림길에서 사느냐 죽느냐를 고민했을 정도였다. 지금 그때로 돌아가서 같은 결정을 하겠냐고 질문한다면, 바로 답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만큼 힘겹고 어려웠다. 다행인 건, 지금은 그때보다는 많이 좋아진 상황이라는 사실이다. 준비하고 나누면서도 감사한 마음이 절로 올라왔다.
기도회를 마치고 오랜만에 온 가족이 다 모였다.
모이려고 한 건 아닌데, 때마침 그렇게 되었다. 첫째가 대학에 들어가서 학업과 그 외 활동들 그리고 아르바이트까지 하느라 만날 시간이 없었다. 기숙사 생활을 하니 더욱 그랬다. 어제는 첫째가 여행 준비로, 집에 온 거다. 며칠 전 김장한 김치를 받아서 수육에 먹으려고 했는데, 때가 기가 막히게 맞았다. 오랜만에 만나서 식사하고 대화를 나눴다. 늦은 시간이라 긴 시간을 보내진 못했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가족의 의미를 되찾은 느낌이었다.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항상 함께할 때도 알았지만, 오랜만에 이런 시간을 가지니 참 좋았다. 두려움을 느끼는 중심에도 가정이 있었지만, 용기로 넘어갈 수 있는 가장 큰 힘이 가정에서 나온다는 것도 절실하게 깨달았다. 어렵다고 미뤘던 가족이 함께 모이는 자리를 한 달에 한 번은 반드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평화가 이곳에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