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지로 결정하는, 경험의 쓸모

by 청리성 김작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수단과 방법에 상관없이, 목적만 이루면 된다는 속담이다. 목적 지향적인 사람들에게는 의미 있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결과이지, 과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정이 아무리 좋아도 결과가 나쁘면, 다 의미 없다고 말한다. “아름다운 패배” 이런 말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과정 지향적인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비칠까?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손사래 친다. 과정의 소중함과 중요성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목적을 이룰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이 올바르지 않더라도, 무조건 인정된다는 의미도 있어 보인다. 사안에 따라서는, 위험한 느낌도 든다. 무엇이 더 옳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결과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결과가 수단과 방법을 아름답게 만들기도 하고, 비참하게 만들기도 하는 듯하다. 아무튼.


이 속담을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다.

‘모로 가도’라는 표현을, 어떤 수단과 방법을 사용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닌, 다른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는 말이다. 어떤 의미일까? 어떤 수단과 방법 그러니까 경험은, 다 소중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은가? 경험한 사람은 안다. 세상에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는 것을 안다. 쓸데없는 경험이라고 여겼는데, 훗날 유용하게 쓰인 경험이 있다. 실수했다고 한탄했는데, 그 실수가 더 큰 실수를 막는 계기가 된 경험도 있다. 또 뭐가 있을까? 크고 작은 많은 경험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 얻은 결과 혹은 상황을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생각지도 못한 경험이 연결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 그래서?’ 감탄이 절로 나온다.


삶은, 어떤 경험을 했느냐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모든 경험의 중요성을 이야기해놓고 중요하지 않다니, 무슨 말인가? 경험 그 자체보다, 경험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하자. “에이, 쓸데없이 시간만 버렸네!”라고 하면, 말 그대로 시간만 버린 경험이 된다. “뭐, 언젠가는 필요할 때가 있겠지?”라고 하면 어떨까? 언제가 쓰일 것이라 여기면, 정말 쓰이게 된다. 실제 경험이 있다. 초행길이었는데, 내비게이션 안내에 따라 이동했음에도, 뭐에 홀렸는지 길을 잘못 들어섰다. ‘새로운 길을 알았으니, 언젠가는 도움이 되겠지?’ 여유 있게 출발했기에, 차분하게 돌아갔다. 얼마 후, 길을 잘못 들어섰던 경험이 유용하게 쓰였다. 시간이 촉박한 상황이었는데, 그곳으로 가게 됐다. 초행길이면 헤맬 가능성이 있던 길이었지만, 경험이 있던 터라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궁즉통.

궁하면 통한다는 말이다. 간절함과 노력으로 길을 찾는다는 의미다. 경험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하는 경험을 밝은 방향으로 바라본다면, 통하고자 하는 길로 연결된다고 말이다. 무엇이든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갈린다. 상황이나 벌어지는 결과는 어찌할 수 없지만, 그것을 해석하는 것은 내 마음으로 결정할 수 있다.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시선으로, 내가 결정하지 못하는 결과를 넘어설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받은 가장 큰 선물인, 자유의지다. 자유의지를 어디에 쓸 것인가? 이 질문에 관한 답이, 지금의 나를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