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의 진정성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by 청리성 김작가

진정성을 판단할 수 있을까?

자신의 진정성은 자신이 판단하면 된다. 타인의 진정성은 어떨까? 판단할 수 있을까? 무엇을 보고 판단할 수 있을까? 표정에서 간절함을 느끼면 진정성으로 인정할 수 있을까? 노력은 어떤가? 정신없이 뛰어다니거나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면, 진정성이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명확하게 이해되는 답변을 들었다. 한 토론 영상이었는데, 누군가가 진정성을 언급했다. 이 말을 들은 다른 사람이 대답했다. “진정성은 판단할 수 없습니다. 타인의 진정성을 무엇을 보고 판단할 수 있습니까?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확정할 수 있겠습니까? 말이나 행동을 보고 짐작할 뿐이지 판단할 순 없습니다.” 잠깐 본 영상이라 말 마디가 다를 순 있다. 핵심은, 타인의 진정성은 짐작할 뿐이지, 판단할 수 없다는 거다. 이 말을 듣는데, 공감했다. ‘그래! 타인의 마음을 어떻게 명확하게 알 수 있나? 짐작할 뿐이지.’ 자기의 마음도 헷갈릴 때가 있다. 양가 감점이 들 때가 대표적이다. 오른쪽으로 가고 싶기도 하고 왼쪽으로 가고 싶기도 하다. 오른쪽으로 가면 이런 부분이 아쉬울 것 같고, 왼쪽으로 가면 저런 부분이 마음에 남을 듯하다. 무엇이 진짜 마음일까? 본인도 모르는데, 타인의 마음을 어떻게 단정할 수 있겠는가.


타인의 진정성은 판단할 수 없다.

누군가의 말을 들으면서 진정성이 있느니 없느니 따지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타인의 말과 행동을 보면서 진정성을 운운한다. “그 사람의 말에는 진정성이 없어!”라고 말하거나, “정말 진정성이 느껴졌어!”라며 그렇게 믿는다. 전자의 경우, 진정성이 없다고 판단했지만, 끝까지 의리를 지키는 사람이 있다. 표현이 서툴렀을 뿐이지, 마음은 그렇지 않았던 거다. 후자의 경우는 어떨까? 사기를 당했을지도 모른다. 구구절절한 말과 태도에서 진정성을 느끼게 되면, 의심을 내려놓는다. 마음이 열리면 모든 것이 다 진실로 느껴진다. 사기를 당한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그렇다. 자기를 속인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다. 홀로 계신 어르신들을 속여서 물건을 판 사람을 봐도 그렇다. “아버님! 어머님!” 하면서 친절하게 대하는데 어찌 진정성을 의심할 수 있을까? 당한 것을 알면서도 원통 해하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이시는 분도 있다고 한다. 왜? 그때만큼은 진정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자식도 찾지 않고 있는데, 누군가가 자식처럼 친절하게 대해 준 것 그 자체로 좋았다는 거다. 씁쓸하고 안타까운 이야기다.


진정성은 본인만 알 수 있다.

엄밀히 말하면, 알 가능성이 크다. 누군가의 진정성을 판단하지 말고 자기 진정성을 따질 일이다. “나는 지금, 나 자신을 진정성으로 대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생각의 낚싯대를 던져야 한다. 무엇이 건져질지, 가만히 기다리면서 살펴야 한다. 급하게 판단하지 말고, 천천히 그리고 곰곰이 살펴야 한다. 이 시간을 통해 자신이 진정으로 마음을 두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 시간이 지나고 자기 마음과 다른 길로 왔다는 것을 알았을 때, 덜 후회하기 위해서는 필요하다. 임종을 앞둔 분들이 공통으로 하는 후회 중 하나가, 자기 마음대로 살아보지 못한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자기 마음대로 살아보지 못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자기 인생을, 진정성을 품고 바라보면서 행동하지 못한 아쉬움이 아니겠는가? 나 자신에게 진정성을 발휘하고 그 마음에 따라야 할 시간이,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