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많은 걱정을 하며 살고 있다.
누군가는 걱정을 만들기도 한다.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을 스스로 걱정으로 정의하고, 머리를 싸맨다. 가만히 보며 별것 아님에도, 별것으로 만든다. 주변에서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해도, 본인은 고개를 절레절레한다. 다른 사람보다 걱정하는 사안에 더 가까이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걱정할 일이 아닌 것도 많다. 걱정의 무익함은 잘 알고 있지만, 사실 잘 안된다. “걱정해서 걱정이 사라지면 걱정할 일이 없겠네!”라며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지만, 덤덤하게 바라보기가 쉽지 않다. 마음에서 요동치고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손가락 끝이 베이면 어떤가? 몸에 아주 일부지만, 몸 전체가 불편하다. 작은 걱정이 온 머리를 헤집고 다니는 것과 다르지 않다.
걱정하는 많은 문제의 원인이 뭘까?
걱정하는 사안에 따라 다를 텐데 문제의 원인이라니, 뭔가 적절한 질문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개별 사안은 다를지 모르겠지만, 개별 사안의 저변에 깔린 마음은 하나로 귀결된다. 그 마음이 원인이다. 모든 원리는 하나로 통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이와 비슷하다. 현재 가지고 있지 않고, 할 수 없는 이유에 집중한다. 걱정하는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쉽게 이해된다. “사람이 없다. 돈이 없다. 시간이 없다. 역량이 안 된다.” 등등의 말을 하면서 걱정한다. 걱정하는 중심에는 “없다.”라는 단어가 꼭 들어간다. 없으니, 방법이 안 된다고 여기고, 없다고 말하는 거다. 없는 것에 집중하는데, 방법이 있을 리가 있겠는가?
걱정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걱정에 머무는 사람이 있고, 방법을 찾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방법을 찾는 사람은 다르다. 심각한 사안인데도, 방법을 잘 찾는 사람도 있다. ‘저게 어떻게 가능하지?’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가벼운 사안도 무거운 걱정에 머무는 사람이 있고, 무거운 사안도 가볍게 방법을 찾는 사람도 있다. 보이는 것이 가볍지, 실제는 무겁게 방법을 찾았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들도 공통점이 있다. 현재 가지고 있는 것에 집중하고,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한다. 걱정에 머무는 사람과 집중하는 것이 다르다. 없음과 할 수 없음이 아닌, 있음과 할 방법에 집중한다. 풀리지 않은 걱정이 있다면, 지금 집중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필 필요가 있다. 걱정에 머물 수밖에 없는 것에 집중하는지 아니면, 방법을 찾는 것에 집중하는지를 말이다.
지금 걱정에 빠져있는가?
방법을 찾는 질문은 이런 거다. “그것을 해결하는데,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도움을 청하거나 조언을 구할 사람은 누구인가? 어떻게 하면 시간을 확보할 수 있겠는가?” 이 질문들이 방법을 찾는 질문들이다. 없음이 아닌, 있음에 집중하게 하는 질문. 스스로 다 해결하려는 것이 아닌, 인적 물적 자원을 충분히 활용하는 질문. 이런 질문이 현재 처한, 걱정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스스로 질문하고 질문에 답을 찾을 때, 방법도 함께 따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