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가 경고했듯이 사람들은 본질에서 벗어나면 이상한 짓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진성 리더십> 중에서-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여러 장면이 빠르게 스쳐 갔다.
빠르게 지나가서 장면이 또렷하진 않지만, 본질에서 벗어나면 엄한 곳에 몰두한다는 것만큼은 명확하게 느꼈다. 본질이라는 것은 본래 가진 성질이라는 뜻으로, ‘본래’라는 의미처럼, 처음 상태의 모습을 말한다. 물건이라면, 처음 만들어진 이유와 목적이다. 모든 물건은 만들어진 이유가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앉기 위해 의자가 만들어졌고, 일이나 기타 작업에 필요해서 책상이 만들어졌다. 손으로 작성하거나 해오던 일을, 컴퓨터가 나오면서 컴퓨터로 대체하였다. 편하고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편한 컴퓨터에 익숙해지니, 이동의 불편함을 느끼게 되었다. 노트북이 만들어진 이유다.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일을 하도록 만들었다. 이 외에도 물건을 하나씩 살펴보면, 이유나 목적 없이 만들어진 물건은 하나도 없다.
일도 마찬가지다.
직업은 세월이 지나면서 만들어지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면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직업이기도 하다. 향후 10년 이내에 사라질 직업 혹은 새로 생기게 될 직업이 소개된다. 사라질 직업은, 더는 필요 없는 일이거나 다른 일에 흡수되는 일이다. 필요 없다는 것은 사람이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맞게 사람을 대체하는 기계 혹은 시스템으로 충분히 해결되는 것이 그렇다. 평생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직업이 사라질 직업 우선순위에 올라온 것을 처음 봤을 때가 떠오른다. ‘과연 지금 직업 중 남아 있을 직업이 있을까?’ 뭔가 싸한 느낌이 들었다.
직업만 봤을 때는 그랬다.
직업의 겉이 아닌, 본질을 들여다봤을 때는 느낌이 달랐다. 책 <불변의 법칙>에서 언급한 내용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무엇이 변할지가 아니다. 변하지 않는 그것이 무엇인지가 핵심이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변하지 않는 그것. 그것이 바로 사람의 본성이고, 본질이다. 세상이 아무리 변한다고 해도, 본질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다이슨의 혁신적인 제품이, 겉으로는 본질을 없앤 것으로 보인다. 선풍기의 본질은 날개인데, 날개가 없는 선풍기를 만들었으니 말이다. 정말 그럴까? 아니다. 날개가 본질이 아니다. 시원함이다. 사람들이 선풍기를 사용하는 이유는, 날개가 아니라 바람이 내는 시원함 때문이다. 아무리 많은 날개가 있어도 시원하지 않다면, 사용하지 않는다.
본질을 명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본질을 잘못 파악하면, 본질에서 벗어나게 된다. 서두에 언급한 니체의 말처럼, 본질에서 벗어나니 이상한 짓에 몰두하게 된다. 선풍기의 본질이 날개라고 파악하면 날개에만 집중하고 좋은 날개를 만드는 데 몰두하게 된다. 시원함 혹은 안정성이 빠진 날개가 나올 가능성도 크다.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끝까지 내려가야 한다. 더는 내려갈 수 없는 곳까지 내려가야, 본질과 마주할 수 있다. 본질을 마주하고 그것에 집중할 때,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방법이 있을까? 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피드백하는 방법을 활용하면 된다. 예를 들면 이렇게 하는 거다.
지각했다고 하자.
지각한 이유가 늦잠을 잤기 때문이라고 하면, 보통은 ‘다음에는 늦잠을 자지 않아야겠다!’라고 다짐한다. 스스로 피드백을 늦잠 자지 않기로 한 거다. 이후에는, 늦잠을 자지 않고 지각하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늦잠을 자서 지각할 확률이 더 높다. 왜 그럴까?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각의 본질이 늦잠이 아니라는 말이다. 끝까지 내려가는 건, 실행 가능한 최소한의 수준까지 찾는 거다. 늦잠을 잤다. 왜? 핸드폰 알람이 울리지 않아서 그랬다. 왜 울리지 않았는가? 핸드폰 배터리가 방전돼서 그랬다. 왜? 핸드폰 배터리가 방전됐는가? 잠을 자기 전에 배터리 체크를 하지 않았다. 결론은, 이렇게 정리된다. ‘지각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기 전에 배터리 체크하고 충전하기.’ 본질을 찾기 위해 끝까지 내려가는 질문 연습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