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훈수

by 청리성 김작가


‘무심(無心)’으로, 악수(惡手)를 피할 수 있는 수(手)


첫째 아이가 뜬금없이, ‘체스’가 하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학교에서 ‘체스’하는 것을 봤는데, 재미있을 것 같다는 게 이유였다. 동네 문구점을 포함해서, 팔 만한 곳을 다 돌아다녔지만, ‘체스’는 없었다. 대형 마트까지 가는 것은, 번거로움과 귀찮음이 뒤섞이며, 내키지 않았다. “체스 대신 장기 어때? 체스가 어차피 서양장기니까.” 집에 장기가 있다는 것이 생각나, 장기로 마음을 돌리도록 이야기를 꺼냈다. 흔쾌히 동의했고, 집에 와서 장기판을 펼쳤다. 장기, 바둑, 윷놀이가 세트로 들어있는 상자인데, 명절 때 윷놀이하려고 샀었다.

말의 이름과 이동 방식에 관해 설명해 줬다.

처음이라 어려울 수 있는데, 말이 가야 할 길을 생각보다 잘 기억했다. 처음 몇 수는 일반적으로 진행하는 형태를 알려주면서, 따라 하게 했다.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말을 옮기는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해본 적이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된 거다. 중요한 건, 나의 왕을 지키고 상대방의 왕을 잡는 것이라고 몇 번 강조해 줬다. 말을 어디로 이동하는 게 좋겠다는 말보다, 최종 목적이 무엇인지만 인지시켜주는 게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는 심정이랄까?


원래 잘하지도 않았지만, 오랜만에 해서 그런지, 판을 잘 보지 못했다.

가려고 하는 것만 생각해, 상대방의 레이더에 걸리는 위치라는 것을 망각했다. 말을 옮겨놓고 3초 정도 후에야, ‘아차’ 했다. 내 앞에서 상대하는 사람이 장기를 어느 정도 둘 수만 있다면, 어렵지 않게 잡혔을 정도였다. 조금 지나서는, 별생각 없이(?) 들어온 공격을 받았는데,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에 빠지기도 했다. 주요한 말을 내어줄 수밖에 없는 위치였다. 공격만 생각하다 보니, 왕을 잘 지킬 수 있는 수비 형태를 갖추지 못했다.

장기는 수비와 공격을 별도로 생각할 수 없다.

수비와 동시에 공격을 할 수 있거나, 공격하면서 수비를 견고히 할 수 있는 수가 좋은 수다. 악수(惡手)는 내 공격만 생각하다 허점을 노출하거나, 수비에 급급하다 말은 말대로 잡혀서 어찌해볼 수 없게 되는 수다. 축구와 비슷하다. 무조건 공격만 할 수도 없고, 무조건 수비만 할 수도 없다. 역습이라고 해서, 수비하다 기습적으로 공격 기회를 만들면 골을 넣을 확률이 높다. 상대방 수비가 견고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악수(惡手)를 두는 경우도 비슷하다.

내가 얻고 싶은 욕심에 마음이 빠지면, 시야가 좁아진다. 그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된다. 흔한 말로 ‘꽂혔다’라는 표현을 쓴다. 심하게 꽂히면, 뺄 수가 없다. 빼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된다. 주변에서 말리거나 조언을 해도 듣지 않는다. 내가 보고 있는 수가, 최선의 수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계속 이야기하거나 여러 사람이 반복적으로 이야기한다면, 한 번쯤 생각해야 한다.

한 걸음 떨어져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구경하는 사람은 자신과 상관없기에, 욕심 없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그래서 수를 더 잘 볼 수 있다. 욕심으로 다른 곳에 꽂히지 않고, 판만 살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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