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고난

by 청리성 김작가
결과로 받아들이면 ‘절망’이 되고, 과정으로 받아들이면 ‘희망’이 되는 것


시련에 부딪히거나 고난에 빠질 때, 다양한 말로 자신의 심정을 표현한다.

다양한 말 중에서, 짧고 강렬한 표현이 있다. ‘고난의 잔’이다. 쓰디쓴 약을 마시듯, 고난을 삼켜야 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지금도 그 시기 안에 들어갈 때가 있는데, 그렇게 느꼈던 예전의 시간이 가끔 생각난다. 그 시간의 상황을 떠올려보면, 그때 당시는 모든 게 절망적으로 느껴졌다. 악몽을 꿀 정도였다.


그 시절, 자주 꾸던 악몽이 있었다.

있는 힘껏 달리고 있는데, 제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아무리 앞으로 나아가려 해도,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붙들려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꿈이었지만 너무 생생했고, 그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잠에서 깨어나면, 식은땀에 흠뻑 젖어 있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그 꿈을 꾼 적이 한참 된 것 같다. 그렇다고 시련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다른 형태의 꿈으로 다가오고 있긴 한데, 전처럼 그렇게 절망적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내공이 쌓여서일까? 지난 시간을 통해 깨달은 것이 있어서일까?


절망적으로 느껴졌던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한때’였다.

잘 나갈 때를 표현하는 ‘한때’도 있지만, 끝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한때도 있었다. 시련과 고난을 절망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조금은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지 생각해봤다. 지금 당장이라 절망으로 느껴지고, 지났기 때문에 담담하게 생각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서 내린 결론은, 어느 시점으로 보느냐이다. 시점에 따라 받아들이는 게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련과 고난을,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고난의 잔을 바라볼 때, 절망하는 이유는 결과로 받아들여서다. 이젠 끝이라는 생각과 더는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이, 절망으로 밀어붙인다. 시련과 고난이 닥쳤을 때 느껴지는 마음은, 절벽 그 자체다. 도저히 넘어설 수도 깰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시련과 고난을 과정으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느낌은, 생각 이전에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험했던 방법을 이야기하면 이렇다.

절망으로 느끼고 있는 마음에, 이건 과정이라고 말해준다.

이건 과정이니 조금만 지나면 좋아질 거라고. 지금은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한 과정이라고 말해준다. 그렇게 마음을 의도적으로 다스린다. 그러면 절망스러웠던 마음이 희망적인 생각으로 서서히 바뀌게 된다. 그런 경험을 몇 번 해보면, 다음부터는 절망적인 느낌에서 희망적인 생각으로 바뀌는 시간이 점점 줄어든다.


믿어야 한다.

고난은, 결과가 아닌 과정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좋은 결과로 가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한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는 것이 결과가 아니다. 그건 과정이다. 목구멍이 따갑도록, 단숨에 넘겨버리는 시원한 생맥주가 결과다. 땀을 뻘뻘 흘렸기 때문에 생맥주를 마시는 게 아니라, 시원한 생맥주를 더 맛나게 마시기 위해 땀을 흘린다. 지금도 그렇다.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맛난 생맥주를 더 맛나게 마시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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