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 천사

by 청리성 김작가
『그 역할을 자처했을 때, 좋은 마음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존재』


휴대 전화가 없었을 때, 삐삐를 사용했다.

호출할 번호를 찍으면, 상대방은 그 번호로 전화를 했다. 고등학생 때였는데, 커피숍을 가면 테이블 위에 전화기가 하나씩 놓여있었다. 그 전화로 호출을 하면, 카운터에서 “****로 호출하신 분?” 하고 묻는다. 자기가 호출했으면 손을 든다. 그러면 그 테이블로 연결해 줬다. 지금처럼 체인 커피숍이 있던 시절이 아니었는데 커피숍이 잘 됐던 건, 호출하고 전화 통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우리나라 사람은 참 머리가 좋다.

호출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삐삐를, 그 용도로만 사용하기에는 뭔가 아쉬웠던 모양이다. 번호가 찍힌다는 것을 이용해 아이디어를 발휘했다. 번호를 암호처럼 사용한 것이다. 예를 들어 급할 때는 ‘8282’를 찍었다. ‘사랑해’라는 단어는 획수를 반영해서 '486'으로 찍었다. 이외에도 많았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연인끼리 그리고 친구끼리 암호처럼 정해서 사용하기도 했다.


암호 같은 번호 중에 단연 으뜸이라고 생각하는 숫자가 있다.

‘1004’이다. ‘천사’라는 단어를 들으면 이 숫자가 제일 먼저 떠오를 정도로 기억에 깊이 배어있다. 여기에 조금 더 과장하면 2004, 3004 하면서 앞 숫자를 높여갔다. 자기 마음이 더 크다는, 뭐 그런 의미다. 중요한 건, 앞 숫자가 뭐로 바뀌든 결론은 천사라는 말이다.

천사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든든한 마음이 든다.

나를 보호해 줄 것 같고 좋은 소식을 들려줄 것 같다. 그래서인지 예전에 모 보험회사에서, 수호천사라는 단어를 사용해 홍보하기도 했다. 보험을 찾을 때는 다급한 상황일 때가 많은데, 그때 든든하게 지켜주겠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내가 해야 할 역할을 할 수 없게 됐을 때, 대신해 주는 사람을 천사라 호칭하는 것도 이런 의미 때문이 아닐까?


하루에 한 번, 누군가에게 천사가 되면 어떨까 생각한 적이 있다.

아는 사람도 좋고 모르는 사람도 좋고, 무조건 선의를 베푸는 거다. 나에게 여분의 음식이 있다면 나눠주고 여력이 있다면 시간을 내어준다. 나보다 급한 사람에게 양보하거나 손이 필요하면 손을 보탠다. 크고 작은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선의를 베푸는 마음을 담아해주는 거다. 그러면 하루를 참 좋은 마음으로 보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선의를 베풀기 전에는 누구에게 베풀지 찾으면서 설레는 마음이 들고, 베풀고 나서는 실천해서 뿌듯한 마음이 들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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