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 밖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책임져야 진짜 내 것이 되는 것』
영화 <기생충>은 우리에게 많은 메시지를 던졌다.
같은 현상을 바라보지만, 해석이 다르듯 시선이 갈렸다. 극과 극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 그런지, 더 극명하게 갈린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살아온 환경과 현재의 삶을 바탕으로 상황을 해석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지금 나와는 다른 환경에 처한 사람의 마음을 위로한답시고, “네 심정 충분히 이해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게 좋다.
내가 바라본 <기생충>에서 건진 메시지는 이렇다.
겉모습은 꾸밀 수 있고 속일 수 있지만, 속(마음)은 꾸밀 수도 속일 수도 없다는 사실이다. 말끔한 대학생이나 유학파 미술 교사로 꾸며도 꾸밀 수 없는 게 있다. 오랜 경력의 운전기사나 일 잘하는 가정부로 숨겨도 숨길 수 없는 게 있다. 냄새다. 오랜 시간 지내온 반지하의 냄새는 그 어떤 것으로도 속일 수 없었고 숨길 수 없었다.
사는 환경에 대해 비하하려는 건 절대 아니다.
나 역시도 그에 못지않은 생활을 했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오랜 시간 지내온 시간을 한 번에 저버리거나 없앨 수는 없다는 말이다. 악의적으로 속이거나 감추는 것은 더욱 그렇다. 오히려 남들은 알아채는데 본인은 아니라고 부정한다. 영화에서도 그렇다. 타인들은 냄새를 인지하지만 정작 그들은 냄새를 인식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한번 밴 냄새는 절대 바꿀 수 없는 걸까?
아니다.
딸의 대사에서도 나오지만, 사는 환경을 바꿔야 한다. 환경을 바꾸지 않으면 냄새는 절대 없앨 수 없다. 환경을 바꾼다는 것은 속을 바꾼다는 것이다. 사람으로 치면, 마음이다. 말이나 행동으로 드러나는 근본인, 마음을 바꾸지 않으면 결국 드러나게 되어있다. 마음은 절대 속이거나 감출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겉으로는 친절한 척하지만, 순간적으로 드러나는 본심은 숨길 수 없다.
글을 잘 쓰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냐고 묻는다. 아! 나한테는 아니고. 글을 잘 쓰는 유명한 분들한테 말이다. 그러면 그분들(내가 들었던)은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전에, 어떻게 살아갈까를 고민하라고 답한다. 표현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표현하기 위한 삶 자체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글도, 말이나 행동과 마찬가지로 마음에서 배어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환경 탓으로 돌리며 살 순 없다. 그럼 내 인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회사의 대표는 관여했든 하지 않았든, 회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책임을 진다. 내 인생의 대표인 나도 마찬가지다. 나와 관련된, 안과 밖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책임져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내 인생이라 말할 수 있고, 내 인생에 대표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