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지향하는 방향으로 충분히 바꿀 수 있는 것 』
‘NJA(New Journalist Academy) 1기’가 지난 달 시작되었다.
나는 새로운 무언가를 만나면, 기회라는 생각보다 ‘뭐지? 뭐지?’ 하다가 놓치기 일쑤였다. 안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아쉬움에 마음이 무거웠던 적도 많았다. 소개 강의를 듣는데, 이번에는 일단 못 먹어도 ‘go’ 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지금 하고 있고 앞으로도 아니, 평생 하려고 생각한 글쓰기가 중심이기 때문이었다. 반가웠다. 아! 그렇다고 내가 글을 잘 쓴다는 말이 아니라, 글을 쓰는 것 자체를 어려워하지 않다는 말이다. 퀄리티를 떠나서.
‘4차산업혁명’이나 ‘웹 3.0 시대’에 필요한 역량이 글쓰기라니….
내가 좋아서 하게 된 글쓰기가, 미래를 준비한 거라는 생각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전혀 상관없을 것 같데 말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미래에 대한 준비는, ‘노후대비’ 같은 거로 생각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도 않고, 그다지 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너무 미래 미래 하니까,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한다는 느낌이 든다.
현재도 충실하게 살기 어려운데 미래라니.
‘현재를 충실히 살면, 미래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을까?’라는 철없는(?)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다. 성경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부자 이야기. 더 많은 재산과 곡식을 쌓아두기 위해 더 큰 창고를 만들려고 계획하지만, 그날 밤 하느님께서 그의 목숨을 가져가신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이야기 말이다.
1주 차 부터 지속되는 과제가 있다.
‘미래 저널’을 쓰는 거다. 몇 가지 질문에 따라 답을 하는 형식으로, 매일 쓰게 되어있다. 책을 받은 날부터 시작했다. 질문을 읽고 바로 작성한 답도 있지만, 한참을 생각하게 한 질문도 있었다. 그중 하나가, ‘나는 누구인가요?’라는 질문이다. 면접을 볼 때나 초면에 인사할 때 말하는, 나를 말하는 게 아니다. 나라는 사람의 본질적인 부분에 관한 질문이다. ‘내가 정의하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바꿔 볼 수도 있겠다. 타인이 아닌, 내가 바라보는 나 말이다.
익숙하지 않은 질문이다.
살짝 낯간지러운 질문이기도 하다. 나에게 편지를 쓰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나직하게, 내가 나의 이름을 부르면서 쓰는 것처럼 말이다. 전혀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다. ‘퍼스널 브랜드’에 관해 깊이 고민도 해봤고, 워크숍 등에서 이런 질문에 관해 생각해 볼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가 나를 정의하는 모습도 조금씩 달라진다. 어쩌면 되고 싶은 ‘나’가 달라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정의한다는 것은, 사실 그대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그랬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당신의 아내는 어떤 사람인가요?”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하자.
내가 인식하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뒤이어, 내가 바라는 아내의 모습도 떠오른다. ‘이랬으면 좋겠다!’라고 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건 아마도, 자신이 알게 모르게 생각했던 부분이기 때문일 테다. 뇌는 실제와 거짓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러고 보면, 내가 바라는 모습으로 계속 바라보면, 바라는 모습으로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어떻게 정의하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어떻게 생각하는지와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보인다.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 내가 생각하는 색을 덫 입히면, 점점 그 색깔로 보이게 된다. 그 색이 어떤 색인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내가 결정하는 색은 어떤 색인지 살펴보면 그게 곧 내 마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은 어떤 색으로 보일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