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9. 확신

by 청리성 김작가
『내가 나를 벗어나려고 할 때, 나를 다시 끌어안아 주는 구심점』


‘확신(確信)’

사람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단어다. 한자만 봐도 알 수 있다. 믿음 앞을 견고하게 지키고 있는데 아무렴. 용기가 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럼 확신은 어디에서 올까? 여러 루트가 있겠지만, 명확하게 아는 것만큼 확신을 주는 게 있을까 싶다. 내가 알고 있는 답이 정확하다는 생각이 들면, 곧 확신으로 연결된다. 남들은 아니라고 해도 나만큼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왜 그런지도 설명할 수 있다. 그 설명이 맞건 틀리건 간에, 자신감 하나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가끔 하는 게임이 있다.

제시어를 맞추는 게임이다. 문제를 내는 사람과 답을 맞혀야 하는 사람을 마주 보게 배치를 한다. 제시어는 답을 맞혀야 하는 사람 뒤에서 보여준다. 문제를 내는 사람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 제시어를 맞힐 수 있게 표현을 한다. 제시어를 유추할 수 있게 설명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몸동작이나 의성어로만 표현해야 할 때도 있다.

답을 맞히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주변 사람들은 너무 답답해한다.

답에 근접하면 아쉬운 마음에 발을 동동 구르지만, 답에서 아예 멀어지면 한심하게 쳐다보기도 한다. 주변 사람이 그러는 이유는 뭘까? 답을 알기 때문이다. 답을 알기 때문에 문제를 내는 사람이 하는, 어떤 설명이나 몸동작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기준이 있으니 그 기준에 맞게 설명을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다.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처럼, 아무리 설명을 못 해도 이해하는 데 큰 지장이 없다.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자신은 어렵지 않게 이해하고 있는데, 답을 맞혀야 하는 사람이 헤매고 있으니 답답할 만도 하다. 하지만 답답해하던 사람도 답을 맞혀야 하는 자리에 앉으면, 비슷한 현상을 보인다. 왜 그럴까? 그 의자에 앉기만 하면 사람의 머릿속이 하얗게 되고 사리판단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 걸까? 장기나 바둑을 둘 때 훈수 두는 사람이 수를 더 잘 본다는 말이 있다. 아무래도 제3 자의 처지에서 보면 여유가 있으니 더 잘 볼 수 있다. 긴장되는 마음에 시야가 좁아지는 당사자와는 다르게 말이다. 하지만, 이런 이유가 아니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답을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답을 알 수 없으니 설명이나 동작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을, 온전히 따라갈 수 없다. 답과는 상관없는 내 생각이 이끄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이해하기도 어렵고, 실마리를 찾을 수도 없다. 이렇게 답을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은 큰 차이를 보인다. 확신이 가져오는 힘은 이렇게 크다. 문제집에 문제를 풀 때는 그렇게 이해가 안 되던 게, 해답만 보면 술술 이해가 되는 것도 매한가지다.

내가 확신하고 있는 건 무엇일까?

누가 뭐라고 해도 자신 있게 그리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확신은 무엇이냐는 말이다. 어쩌면 내가 그렇게 마음에 품고 있는 확신이, 나를 이끌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 삶의 중심에서 내가 벗어나려고 할 때, 이 확신이 나를 다시 끌어당겨 준다. 힘들고 어려워서 주저앉고 싶을 때, 나를 일으켜준 확신을 기억할 거다. 지금 또다시 힘들고 어려워 주저앉고 싶다면, 내 안에 있는 확신을 들춰보자. 다시 나를 일으켜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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