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장담할 순 없지만, 인생의 의미를 찾고 실행할 때 얻을 수 있는 것』
‘보장(保障)’
내가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
내가 선택해서 하는 행동에 대해 확실하게 보상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내가 원하는 결과를 낼 수 있다고 보장받을 수는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없다. 주사위가 손에서 떠나가고 뱅글뱅글 돌지만, 숫자가 무엇이라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과 같다. 자신이 선택해서 하는 행동도, 확실하다는 마음에 했지만,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갈 때가 있다. 그런데 하물며 과연 누가 누구를 보장해 줄 수 있다는 말인가?
아! 그런 사람이 있다.
사기꾼이다. 사기꾼은 상대방에게, 자신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원하는 보상을 해줄 수 있다고 말한다. “보장합니다!”라며, 확언할 수 없는 것을 강조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집어치우라고 하면 없던 일이 되지만, 귀가 솔깃해져 마음마저 열어버리면 다음은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 대부분은 땅을 치며 후회하는 모습으로 이어진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보장해 줄 수 없다. 더군다나 상식 밖에 제안이라면 더욱 그렇다고 봐야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
그렇다면, 보장받지 못할 줄 알면서 하는 행동은 다 잘못인가? 보장은 고사하고 그 선택으로 고생길이 훤히 보인다면, 그 선택은 더욱이 하면 안 되는 행동일까?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해서 득 될 게 없는 행동이니, 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뜯어말린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더욱 강경하게 말린다. 설득하기도 하고 위협을 느끼도록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자신이 선택한, 보장은커녕 고생길이 보장(?) 된 길로 가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 확신에 가득 찬 사람들이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니라는 말이 있다. 노래 가사에서도 나오고, 글에서도 가끔 볼 수 있다. 분명 숨은 쉬고 있고 심장은 뛰고 있지만, 진정 살아있는 느낌이 아니라고 한다. 살아있는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의미니 뭐니 생각하지 않으며 무던하게 살아갈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있는 그리고 살아가는 의미를 계속 찾으려 한다. 어쩌면 삶 자체가 그런 의미를 찾는 과정이라 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들에게 삶의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자신이 살아 숨 쉬고 있는 의미의 정의를 찾지 못하면 찾을 때까지, 찾았으면 그것을 실행하는 것에만 집중한다. 그것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아무리 더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과 같다. 심지어 그것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목숨을 보전하더라도, 자신이 찾은 삶의 의미를 행할 수 없다면 혹은 그것에 반하는 길을 걸어야 한다면, 그건 살아도 사는 게 아니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늘 ‘삼일절’은 그런 의미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날이다.
주중에 쉬는 금쪽같은 휴일을 넘어, 이분들이 지키신 이 나라와 지금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생각하게 된다. 만약 이분들이 없었더라면,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그 시절의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당연하게 느끼며 누리고 있지만, 감히 엄두도 못 내는 그런 시간일 수 있다. 잃어버린 후에야 아쉬움을 느끼고 소중함과 고마움을 느끼는 게 사람 마음이지만, 잃기 전에 소중함과 고마움을 놓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내가 살아 숨 쉬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을 찾았는가 아니면 찾고 있는가? 그것을 위해 내가 움켜쥔 모든 것을 내어놓을 수 있는가? 그것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무엇을 포기하고 있는가? 무엇을 감내하고 있는가? 그것을 이뤘을 때 내 삶에는 어떤 의미가 부여될까? 이런 질문들을 하나씩, 곰곰이 되새기며 오늘 하루를 보내야겠다. 내 삶에 의미를 찾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