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기준에 따라 신뢰할지 의심할지 살펴야 하는, 순간적인 결론』
‘직감(直感)’
어떤 상황에서 이런저런 이유와 설명 필요 없이, 바로 결론에 이를 때가 있다. 이런 감각을 직감이라 표현한다. 화살이 과녁에 꽂히듯 머릿속이나 마음에 팍하고 꽂히기도 하고, 스펀지에 물감이 스며들 듯 느낌이 번져올 때도 있다. 직감은 하루에도 몇 번 발동되기도 한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자주 발동된다. 그래서 직감이 잘 맞아들어갈 때면, “요즘 감이 좋아!”라고 표현하고, 잘 맞지 않으면 “영~ 감이 떨어졌어!”라고 말한다.
직감은 단순한 느낌이 아니다.
요즘 한창 입에 오르내리는 인공지능처럼, 경험을 통해 쌓인 지식과 지혜가 종합적으로 버무려져 나오는, 융합된 결론이라 말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결론에 이를 때는, 자신의 의지와 프로세스에 따라 생각하면서 끌어간다. 이런저런 생각이 다른 생각을 발생시키고, 그 생각들이 얽히고설켜 점점 결론에 이르는 길을 찾아간다. 마치 미로에 갇힌 하얀 쥐가 출구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다 빠져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직감은 다르다.
의지가 발동되기 전에 순간적으로 결론에 다다른다. 결론에 닿은 생각이나 느낌이 나를 흔들어 깨운다. 그리고 차분히 생각하게 된다. 그 결론에 다다른 이유를 하나씩 살펴본다. 그럼 그 결론에 닿은 이유를, 거의 알 수 있게 된다. 여기서 거의라고 말하는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에 이른 이유를, 자신도 모를 때가 있기 때문이다. 왜 그런 결론을 내렸는지 설명하긴 어렵지만, 결론은 명확하다. 가끔은 이런 느낌에 소름이 돋기도 한다.
직감은 왜 발동될까?
외부의 정보나 상황 때문이다. 외부에서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거나 상황이 발생하면, 그 정보가 옳은지 그른지 혹은 좋은지 나쁜지를 판단하게 된다. 상황이라면, 지금 어떤 상황이고 내가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본능이라고 보는 게 맞겠다. 갓난아이도 그런 판단을 하기 때문이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사람인지 그렇지 않은 사람인지를 순간적으로 판단한다. 그리고 표현을 한다. 방긋 미소를 짓거나 울음을 터트린다. 그럼 그 앞에 있는 사람은 알게 된다. 이 아기가 나를 어떤 사람으로 분류했는지를 말이다.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라면 판단이 더 중요하다.
그것도 바로 결정을 해야 한다면, 더욱 그렇다. 처음 사람을 만날 때 자주 경험한다. 지금 이 사람이 진실을 말하는지 아니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포장해서 말하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지금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판단이 서지 않으면 머리와 마음이 복잡해진다. 이런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고 본다. 채용을 위해 면접을 볼 때가 그렇고, 처음 만난 누군가와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할 때가 그렇다. 처음 보고 바로 혹은 짧은 시간 내에, ‘yes’ or ‘no’를 선택해야 한다.
직감은 신뢰해야 할까? 의심해야 할까?
그건 기준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 삶의 기준에서부터 뻗어 나오는 큰 줄기의 기준이 있으면 상황에 따른 작은 줄기의 기준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고 만들 수 있다. 그 기준을 바탕으로 신뢰할지 의심할지를 판단하면 된다.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결정해야 할 때 결정을 하지 못한다. 기준이 없으니 선택이 어려워지는 거다. 자기만의 기준을 갖지 않으면, 혼란만 더해진다. 직감을 믿을지 말지를 생각하기 전에, 내 삶의 기준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내 삶의 기준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 구절을 인용한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마태 3,17) 이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내 삶의 기준이다. 이 기준에 따라 판단한다. 물론 모든 말과 행동이 이 기준에 따라 된다면 너무 좋겠지만, 실상은 그러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기준은 바로 서 있으니, 많이 벗어나는 삶을 살진 않을 것으로 믿는다.